무슨 생각하니60 너의 것이 더 적어 보인다면 그건 착각이야 '소중한 식당'을 주제로 쓴 글 고등학생 때, 아픈 학생이 아니면 야간 자율학습을 매일 의무로 해야 했다. 학교는 학생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걸로 모자라 방학 때도 특강 수업을 들으라고 붙잡아 뒀다. 그 김에 자율학습까지 시켰다. 3년 동안 학교에 머물렀던 시간이 참 길었다. 그만큼 친구들과도 오래 붙어있었다. 공부했던 시간, 공부하는 척했던 시간 외엔 모든 것이 즐거웠다. ‘소중한 식당’ 하니 떠오르는 몇 군데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그 때 자주 갔던 곳들이다. 주로 방학 자율학습이 끝나고 출출하거나, 학원 가기 전 애매하게 시간이 떴을 때, 동아리 모임 날 선후배들과 모처럼 등의 이유로 갔을 것이다. 그 식당들 중 제일은 학교 정문 앞 아파트 상가 2층에 있던 ‘장터국수’다. 요리사 거.. 2024. 8. 29. 새참은 사치요 “고추든, 상추든 일단 한 번 키워보세요, 되게 잘 자라요.” 입주 바로 전 10월 중순 즈음, 이전 세입자 아저씨는 께름칙하게 내 눈을 피하며 말했다. 슬쩍 봐도 ‘처리하기 귀찮았는데 잘됐다’는 문장이 얼굴 뒤로 적혀있었다. 정신없는 이사를 마치고 둘러본 마당에는 흙이 가득 찬 사각 고무 대야 네 개, 그리고 한 아름 둘레로 벽돌을 쌓아 만든 간이 텃밭이 두 군데 있었다. 일부에는 몇 달 전인지 몇 년 전인지 심었는지 모를 정체불명의 식물이 바싹 늙은 채로 흙에 꽂혀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육포처럼 말라비틀어진 고추가 위태롭게 매달려있었다. 텃밭은 겨우내 온갖 길고양이들의 배설물을 다 받아냈다. 마침내 들풀 씨앗들이 온기에 눈을 떠 좁쌀만한 싹을 하나둘씩 틔울 무렵이었다. 동네 화원에서는 바로 지금 .. 2024. 8. 14. 부딪치지 마라 덥다 본가 방문 후 돌아오는 길. 어머니가 챙겨주신 반찬과 과일이 든 에코백을 들고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2분 남짓 이동했을 뿐인데 벌써 가슴팍과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래, 나는 올해 가장 뜨겁고 습한 날들을 보내고 있구나. 이 정도 인식으로는 더위로 울컥 치미는 화를 달랠 수 없었다. 그래, 이것은 혹서기 훈련이다. 사악한 햇볕과 만물을 질식시키는 습도를 견뎌내는 훈련을 마치면 찬물 샤워가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스스로 최면이라도 걸어야 다음 발이라도 가까스로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훈련을 주관하는 교관이 태양이면, 귀가길 곳곳에 도사리고 있던 지하철 플랫폼은 악마 조교였다. 악명 높은 그의 미션은 내 옷을 빈틈없이 땀으로 젖게하는 것. 처음 지하철을 탈 때, 환승할 때, 마지막에 내릴 때 .. 2024. 8. 7. 후둑 후두둑 후두두둑 - 비 맞으러 나가는 날에 대한 소고 https://youtu.be/gkpgWqySX-0?si=xItcbB0Cz3PszeM_Cal Tjader - Huracan 후둑 후두둑 후두두둑 짙푸른 수박을 쩍-하고 갈라 입 주변이 흥건해지도록 달큰한 과육을 먹어치우기. 여름에 빠지면 섭섭한 일이다. 냉면은 또 어떤가. 육수와 메밀 함량이 어쩌고 출신 이북 지역이 저쩌고를 떠나 내 입맛엔 싸구려 고깃집 후식 냉면부터 우래옥 물냉면까지 무엇이든 달갑다. 바다 수영과 서핑도 여름이 선사하는 즐거움 중 하나. 안락한 집으로부터 멀리 떠나보는 것은 언제든 설레는 일이고, 뙤약볕 아래여도 바다가 오늘 하루의 무대였다면 방구석까지 딸려온 모래알갱이들을 쓸어내는 일도 고깝지만은 않다. 반면 여름이라 꼭 피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내겐 몇 년 전까지만 해.. 2024. 7. 31. 이 주의 오피니언(8) 지난주 와룡 공원. 멀리서 회색 빛의 러시안 블루 고양이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품종묘가 왜 돌아다닐까. 야생의 고양이들과 어울리며 지내는 것 같았다. 주인에게 버림받았을까, 도망쳐 나왔을까. 어느 쪽이건 인간의 집에서 살다 나온 녀석이라면 뒤늦게 울타리 바깥의 생활에 적응하기란 어려운 일 아닐까 싶었다. 살짝 거리를 좁히니 무성해진 철쭉 가지들 사이로 달음박질. 그러다 그저께 또 녀석을 보았다. 이번엔 스스로 보금자리라고 선언한 듯한 곳에 고고하게 앉아있었다. 그래서 편한 마음이었는지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았다. 줌 없이도 그럭저럭 사진 찍을 수 있는 거리까지 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자세히 보니 이 녀석 회색털을 가진 코리안 숏헤어 같았다. 꼬리 전체에 은은하게 스트릿 느낌 물씬 나는 검은 줄무늬가.. 2024. 6. 23. 이 주의 오피니언(7) 이번 주는 구미가 당기는 기사가 별로 없었다(절대 쓰기 싫어서 그런 것 아님ㅎㅋ). 매번 똑같은 이야기, 미적지근한 당리당략의 소용돌이에서 건져낸 뜨거운 몇 가지만 소개. 6월 11일 화요일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366010 [사설] 성장 잠재력 잃어 가는 한국…도약의 길은 혁신 DNA다기업 생산성 증가율, 6.1%에서 0.5%로 급락해 기술 진보 통한 성장 동력 확보 전략 마련해야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절대 강자인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시총)이 최근 3조 달러를 돌파했다. 반도체 기n.news.naver.com 실적과 이익 위주의 국내 기업 문화와 풍토의 문제점을 잘 진단하고 해결 방향을 제시한 사설. 제도적으로 안정적인 뒷받침이 당장의 성과가 부족.. 2024. 6. 15. 이전 1 2 3 4 5 6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