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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하니64

부딪치지 마라 덥다 본가 방문 후 돌아오는 길. 어머니가 챙겨주신 반찬과 과일이 든 에코백을 들고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2분 남짓 이동했을 뿐인데 벌써 가슴팍과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래, 나는 올해 가장 뜨겁고 습한 날들을 보내고 있구나. 이 정도 인식으로는 더위로 울컥 치미는 화를 달랠 수 없었다. 그래, 이것은 혹서기 훈련이다. 사악한 햇볕과 만물을 질식시키는 습도를 견뎌내는 훈련을 마치면 찬물 샤워가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스스로 최면이라도 걸어야 다음 발이라도 가까스로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훈련을 주관하는 교관이 태양이면, 귀가길 곳곳에 도사리고 있던 지하철 플랫폼은 악마 조교였다. 악명 높은 그의 미션은 내 옷을 빈틈없이 땀으로 젖게하는 것. 처음 지하철을 탈 때, 환승할 때, 마지막에 내릴 때 .. 2024. 8. 7.
후둑 후두둑 후두두둑 - 비 맞으러 나가는 날에 대한 소고 https://youtu.be/gkpgWqySX-0?si=xItcbB0Cz3PszeM_Cal Tjader - Huracan  후둑 후두둑 후두두둑   짙푸른 수박을 쩍-하고 갈라 입 주변이 흥건해지도록 달큰한 과육을 먹어치우기. 여름에 빠지면 섭섭한 일이다. 냉면은 또 어떤가. 육수와 메밀 함량이 어쩌고 출신 이북 지역이 저쩌고를 떠나 내 입맛엔 싸구려 고깃집 후식 냉면부터 우래옥 물냉면까지 무엇이든 달갑다. 바다 수영과 서핑도 여름이 선사하는 즐거움 중 하나. 안락한 집으로부터 멀리 떠나보는 것은 언제든 설레는 일이고, 뙤약볕 아래여도 바다가 오늘 하루의 무대였다면 방구석까지 딸려온 모래알갱이들을 쓸어내는 일도 고깝지만은 않다.   반면 여름이라 꼭 피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내겐 몇 년 전까지만 해.. 2024. 7. 31.
이 주의 오피니언(8) 지난주 와룡 공원. 멀리서 회색 빛의 러시안 블루 고양이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품종묘가 왜 돌아다닐까. 야생의 고양이들과 어울리며 지내는 것 같았다. 주인에게 버림받았을까, 도망쳐 나왔을까. 어느 쪽이건 인간의 집에서 살다 나온 녀석이라면 뒤늦게 울타리 바깥의 생활에 적응하기란 어려운 일 아닐까 싶었다. 살짝 거리를 좁히니 무성해진 철쭉 가지들 사이로 달음박질.   그러다 그저께 또 녀석을 보았다. 이번엔 스스로 보금자리라고 선언한 듯한 곳에 고고하게 앉아있었다. 그래서 편한 마음이었는지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았다. 줌 없이도 그럭저럭 사진 찍을 수 있는 거리까지 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자세히 보니 이 녀석 회색털을 가진 코리안 숏헤어 같았다. 꼬리 전체에 은은하게 스트릿 느낌 물씬 나는 검은 줄무늬가.. 2024. 6. 23.
이 주의 오피니언(7) 이번 주는 구미가 당기는 기사가 별로 없었다(절대 쓰기 싫어서 그런 것 아님ㅎㅋ). 매번 똑같은 이야기, 미적지근한 당리당략의 소용돌이에서 건져낸 뜨거운 몇 가지만 소개. 6월 11일 화요일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366010 [사설] 성장 잠재력 잃어 가는 한국…도약의 길은 혁신 DNA다기업 생산성 증가율, 6.1%에서 0.5%로 급락해 기술 진보 통한 성장 동력 확보 전략 마련해야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절대 강자인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시총)이 최근 3조 달러를 돌파했다. 반도체 기n.news.naver.com 실적과 이익 위주의 국내 기업 문화와 풍토의 문제점을 잘 진단하고 해결 방향을 제시한 사설. 제도적으로 안정적인 뒷받침이 당장의 성과가 부족.. 2024. 6. 15.
이 주의 오피니언(6) 일찍 일어나는 주말 오전에 잠 깨면서 하는 집안일은 차일피일 미루어진 그것과 아주 성격이 다르다. 능동맨이 된 것 같은 만족감과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여유는 훌륭한 자양이 된다. 선선한 새벽 기운이 가시기 전 텃밭에서 잡초 뽑고, 툭툭 손 털고 빨래, 청소, 밥 먹을 준비 그리고 맛있게 먹기. 배 두들기며 시계를 봐도 여전히 정오 전이네. 평일은 100원, 주말은 1000원이기 때문에 늦잠 자기엔 너무 아깝지 않겠냐는, 스레드에서 떠돌던 글 덕분에 이른 아침 기상에 용기를 한 줌 더 얻은 한 주였다. 6월 3일 월요일https://naver.me/xAVLwDXH [기고] 연금개혁, 100년을 내다보자맹자가 왕에게 물었다. “화살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한 병사가 겁을 먹고 한 50보쯤 도망치다가 문득.. 2024. 6. 10.
이 주의 오피니언(5) 지난 주말에 친가가 있는 부산에 다녀왔다. 올해 처음이었다.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명절에 우리의 귀향을 크게 기대하진 않으실 것 같다. 그저 언제라도 좋으니 자주 와다오, 라는 마음 아닐지.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또 온나, 라는 말씀을 어언 10년째 하시는 할아버지. 유난히 정정하셨고 지금도 여전하시지만, 그래도 방문 때마다 한 겹 더해진 쇠락을 목격하는 건 영 마음이 쓰인다. 아흔 해 지식과 지혜가 언젠가는 온데간데없이 투명해진다고 생각하니 애가 닳았지만 할아버지를 앞에 두고 더 이상 나눌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세월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벽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짧은 방문을 알차게 채우고 싶은 내 욕심인 것 같다. 편찮으신덴 없냐며 으레 건네는 인사치레는 겸연쩍고, 날씨 얘기는 당연해서 바보.. 2024.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