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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6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 이 글은 「상실의 시대」의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아닐 수도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원제를 가진 이 책은 「상실의 시대」이라는 이름으로 1989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다. 요즘 민음사에서 리커버하여 판매 중인 「노르웨이의 숲」이 일본 원작의 디자인에 가깝긴 하지만, 나는 위 사진 속 국내 버전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예전 책을 구입했다. 서체가 현재 판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폰트 색깔도 '나오코'가 직접 떠 주인공에게 선물한 스웨터와 같은 포도색이라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30년을 넘도록 베스트셀러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상실의 시대」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보다도 먼저 들어본 도서명이었다. 또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겐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는데.. 2024. 1. 21.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고. 순례 '순례'라는 말은 종교가 없는 나에겐 아주 낯설고 지구 반대편에서나 일어날 법한 예사롭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 '순례'가 하나의 바구니라면 거기엔 수양, 숭고와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있을 것만 같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순례를 출근길 버스와 지하철에서, 취침 전 엎드려서 함께할 수 있었던 건 흔히 할 수 없는 경험이자 큰 행운이었다. 물론 주인공을 통해 간접적으로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소설에나 해당될 수도 있겠으나, 유난히도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하루키의 플롯에 의해 주인공의 입장에 유난히도 깊이 끌어당겨졌던 것 같다. 순례는 곧 여정이다. 작가의 설정대로 여정은 펼쳐진다. 같은 여정일지라도 시간 순으로 옆에서 관찰하듯 단조롭게 서술하기보다.. 2023. 8. 15.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을 읽고. 얼마전 「1Q84」 로 하루키의 유니버스에 입장했다. 압도적으로 빨려들게 하면서도 소중히 읽고 싶었던 서사를 창작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내가 충분히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검색해보니 그는 소설 쓰는 것 외에도 번역이나 에세이 쓰는 일도 병행하는 이른바 ‘헤비라이터’였다. 내가 주로 쓰는 글은 에세이의 성격이 강하므로 하루키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에세이를 비롯한 ‘잡문’을 쓰는 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선택한 이번 책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 지금껏 그가 쓴 에세이들만 엮은 책도 몇몇 출간되었지만 이 책은 에세이 뿐만 아니라 정말로 ‘잡문’이라고 불려도 좋을 글들로 빼곡하게 실려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간단 소개 ‘잡문집’에는 하루키의 길고 짧은 글 수 십편이 수록되어있다... 2023. 6. 25.
「1Q84」 2권을 읽고. ※「1Q84」 2권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뒷 내용이 궁금해 서둘러 읽어내려는 조급한 마음과 한 자 한 자 더 꼼꼼히 눌러 담으려는 마음 사이의 엎치락뒤치락 싸움이었다. 어질어질하다. 600쪽짜리 책을 채 이틀이 되기도 전에 다 읽어본 적이 살면서 있었을까? 시간 많고 책 좋아했던 군인 시절에도 이렇게는 안 읽었던 것 같다. 워낙 흥미진진한 내용의 연속이라 어떤 장에서는 글자들을 쫓는 눈을 오로지 지금 읽는 부분에 집중하도록 초점을 의식적으로 고정하는 일을 정말 치열하게 했다. 시야를 가능한 한 좁게 유지해야 했다. 같은 장 다음 문단에 왠지 갈등을 심화시키거나 결정적인 장면이 나올 것이 예상될 때 아직 지금 읽을 차례인 문단을 건너뛰고 싶은 마음을 달래주느라 안간힘을 썼다. 2권도 전편과 마찬가.. 2023. 6. 5.
「1Q84」 1권을 읽고. ※ 「1Q84」 1권에 대한 스포일러를 아주 약하게 담고 있는 글인데 이 정도는 그냥 읽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1Q84」 1권을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굉장한 레코드 수집가라는 것이 작품과는 별개로 그를 더 멋스러워 보이게 했다. 처음 읽는 그의 작품으로도, 그리고 글자들과 어색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1Q84」를 선택한 것은 좋은 결정이었다. 그의 이야기 전개 방식과 '적확'한 비유 덕에 읽기에 가속이 붙어 1권을 일주일 만에 독파할 수 있었다. 물론 충분히 시간을 들이기도 했지만 전공서적을 연상케 하는 이토록 두꺼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 자체가 서른 이후의 내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문학의 끌어당기고 매달리게 하는 힘은 역시 대단하다.. 2023. 5. 29.
책 읽기는 램지 루이스와 함께. 최근 들어 써낸 글들은 다시 읽어봐도 영 재미가 없다. 문단을 하나둘 읽고 나면 머지않아 집중력이 흐트러져 휘적휘적 아래로 스크롤한다. 첨부된 사진이나 좀 훑어보고 남은 활자의 양을 가늠하면서 '많이도 썼네' 하는 생각으로 다시 글목록으로 돌아간다. 2월 말부터 16개의 글을 매주 썼다. 처음엔 그럭저럭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안가 개인적인 경험이나 이야기를 풀어내기보다는 인터넷 세상에 떠도는 정보와 사실을 단순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 지점에서 읽을 만한 흥미가 급격하게 떨어진 듯하다. 비로소 나의 밑천이 드러났고 이런 식으로는 시간 내어 이 글을 읽어 주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 사람을 홀릴 정도로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한다는 것은 지극히 참인 명제다. .. 2023.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