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하니64 피라미 가라사대 얼마 전 일입니다. 맑은 날 오후에 성북천을 따라 산책을 하는데 느닷없이 비가 내리는 줄 알았어요.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성북천 위로 잔잔한 파문이 동시에 여러 군데에서 피어올랐거든요. 근데 피부에는 빗방울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어찌 된 영문인지 표면을 한참 내려다보고 있었더니, 새끼손가락 정도 크기의 피라미가 물 위로 끝도 없이 점프를 하고 있었습니다. 토독… 툐도독… 토독… 돌고래나 날치 정도는 돼야 수면 위에서 곡예를 하는 줄 알았는데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피라미가 폴짝거리고 있으니까 정말 빗방울이 만들어낸 물살 같았습니다. 피라미들이 물 위로 뛰어오르는 이유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맘때쯤에는 주로 수컷들의 구애 행동이라고 하네요. 보면 볼수록 장관이라, 물가에서 우두커니 .. 2025. 6. 13. 두 눈으로 똑똑히 봤구만유 여러분의 귀여움 사전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 주길 바란다. 딱 여기 모인 분들까지만이다. 유행이 되면 안 된다. 아무튼 주인공은 바로 새다. 새가 생각보다 귀엽다. 이 귀여움 때문에 탐조(birdwatching)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전 세계에 새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 창문을 열면 보이는 비둘기나 참새, 까치, 직박구리에는 매력을 못 느낄 수 있다. 개, 고양이와 달리 금방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서점에서 새 도감만 하나 사봐도, 아니면 유튜브 새덕후 채널 영상 하나만 봐도 조류를 바라보는 마음이 금세 달라질 수 있다. 새를 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건 바로 새들의 민첩함과 희귀함이다. 우리의 나안으로는 새들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포착해 낼 수가 없다. 거울을 보.. 2025. 6. 4. 텅 빈 커튼콜 고등학생 때 무슨 정신이었는지 학교 연극동아리에 들었다. 배우로도 스탭으로도 매년 한 두 번씩 연극에 참여했다. 부원들끼리 붙어있는 시간이 많았다 보니 몇몇은 오히려 같은 반 친구들보다 더 돈독해졌다. 졸업 이후에도 한 학년 위인 9기 멤버들과는 유독 더 친하게 지냈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입학하고도 우리는 계속해서 연락을 이어갔다. 마침 9기 선배 두 명이 그해 말에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입대 전에 마지막으로 놀아보자는 뜻으로 졸업생 공연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다. 재밌겠는데? 목표 공연일자는 삼개월 뒤인 10월 중순. 그때부터 의기투합하여 우리는 공연을 기획했다. 이왕 학교 바깥에서 해보는 연극이니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을 대관하자, 이제 학교 동아리.. 2025. 5. 15. 애뉴얼 엄개 잔치 막내딸인 엄마는 오빠가 네 명이다. 나고 자란 고향은 최근 2010년대가 돼서야 도로에 아스팔트가 깔렸던 시골인데, 여전히 집안의 장남, 차남인 외삼촌들이 거주하고 있다. 해마다 봄철이 되면 둘째 외삼촌이 어릴 때 네가 좋아하던 거다 하면서 여전히 그 고향 땅에서 자라고 있는 봄나물을 캐 엄마 앞으로 택배를 보내준다. 매번 새로운 종류의 채소가 추가되거나 품목이 달라지지만 변함없이 가장 많이 들어있는 것이 바로 ‘엄개’다.엄개는 엄나무순으로 ‘개두릅’이라고도 부른다. 흔히 아는 봄나물의 제왕 두릅과 같은 식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릅보다 맛이 더 씁쓸하고 영양도 많고 귀하다. 보통 나물처럼 무침, 조림 등으로 먹을 수 있겠으나 엄마는 엄개를 살짝 데친 후 ‘젓국(부산 방언으로 ‘쩟꾹’으로 발음해야 .. 2025. 4. 27. 왕십리야 고맙고 미안해 왕십리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교통 요충지? 아니면 곱창인가요? 김흥국입니까? 이제 김흥국은 뺍시다. 아무튼 저는 1999년부터 왕십리 주변에 살았습니다. 대충 따져도 20년이 넘네요. 근데요, 저 여러분께 푸념 좀 하겠습니다. 왕십리 주민들이 뭘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온 우주가 ‘괜찮은’ 카페와 식당의 왕십리 입성을 막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우주는 좀 과장이고 적어도 암흑의 세력의 존재는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커피에 눈 뜨고 친구들과 카페에 들락날락하기 시작한 게 고등학교 땐데요. 아메리카노에 눈 찌푸리고 겨우겨우 설탕시럽 타 마실 때니까 커피 맛은 당연히 잘 몰랐을 거고, 그저 제대로 된 카페라면 오래 앉아 떠들 수 있는 푹신한 소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카페를 골랐던 .. 2025. 3. 27. 한글 레터링 디자인 워크숍 수강 회고 타이포그래피를 중심으로 그래픽 디자인과 가까워지면서 그동안 떠오르는 모양대로 글자들을 그려보고, 스캔 후 디지털 환경에서 벡터화하는 과정을 몇 차례 해보았다. 작업한 글자들이 내가 만든 포스터나 홍보물 등에 활용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요상하면서도 뿌듯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코칭 없이 혼자서 하다보니 결과가 나와도 '정말 이렇게 하면 되는 걸까?', '중간에 빠트린 과정이 있진 않을까?' 하는 의문이 매 작업마다 항상 뒤따랐다. 의문에 휩싸여 결과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나오기도 했고. 이런 의문을 해소하고 실제 현업에 계신 분들의 프로세스를 엿보고 싶어서 레터링 워크숍을 등록했다. 진작에 레터링 수업을 왜 안들었냐? 한다면... 왜 안 찾아봤겠나. 많은 레터링 디자인 워크숍이.. 2025. 3. 9. 이전 1 2 3 4 ···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