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 가라사대

얼마 전 일입니다. 맑은 날 오후에 성북천을 따라 산책을 하는데 느닷없이 비가 내리는 줄 알았어요.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성북천 위로 잔잔한 파문이 동시에 여러 군데에서 피어올랐거든요. 근데 피부에는 빗방울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어찌 된 영문인지 표면을 한참 내려다보고 있었더니, 새끼손가락 정도 크기의 피라미가 물 위로 끝도 없이 점프를 하고 있었습니다. 토독…  툐도독… 토독… 돌고래나 날치 정도는 돼야 수면 위에서 곡예를 하는 줄 알았는데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피라미가 폴짝거리고 있으니까 정말 빗방울이 만들어낸 물살 같았습니다. 피라미들이 물 위로 뛰어오르는 이유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맘때쯤에는 주로 수컷들의 구애 행동이라고 하네요.

 

보면 볼수록 장관이라, 물가에서 우두커니 보고 가기엔 미련이 좀 남겠더라고요. 마침 근처에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있었어요. 서둘러 내려가서 큼직한 돌덩이들을 사뿐사뿐 밟아 건넜습니다. 한가운데 있는 돌 위에 멈춰서 표면을 내려다보니 풍경이 정말 예술이었습니다. 소실점이 정중앙에 위치해 경치가 저를 감싸는 듯한 포근함과 흐르는 물 위로 은빛 피라미 무리의 점프쇼 한바탕 …. 뒤쪽에서 한 놈 낚아채려고 기웃거리는 쇠백로까지.  

 

징검다리는 걸터앉기 좋은 크기였어요. 바로 아래에 발판으로 쓸 넓적한 돌도 있어서 앉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피라미들이 떼지어 그들의 쇼를 봐달라 말하며 호소하는 듯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피라미 멍을 때리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다가,

 

‘아 나 징검다리 한가운데에서 풍경 보는 거 좋아하네?’

 

하긴 제가 그런 지점들을 좋아했었습니다. 이쪽에서 저쪽을 이어주는 길목의 한 가운데에 있는 지점이요. 이를테면 육교에서나 횡단보도, 한강 다리의 한복판이 되겠고요. 거기 서서 보는 경관과 직접 거기서 찍은 사진들이 저한테는 오묘했습니다. 그래서 2호선을 타고 강변에서 잠실나루역으로 갈 때, 1호선 노량진역에서 용산역을 갈 때 한강 다리 위에서 창밖을 내다보면서 남다르게 풍경을 즐겼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마음을 빼앗기는 가장 큰 이유는 일상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도에 서서 사선으로 바라보는 풍경이랑은 꽤 다르다니까요. 코엑스 한 번씩 가보셨죠. 영동대로 횡단보도 건널 때 중앙선쯤에 서서 정지해 있는 차들 쪽으로 몸을 돌려서 경치를 한 번 살펴보세요. 강남대로도 좋습니다. 높은 빌딩이 나를 중심으로 좌우에 줄지어 늘어선 그 광경에 압도되어 보세요. 제 밋밋한 일상에 잠깐이나마 자극을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큰 도로일수록 당연히 초록불 신호 시간도 넉넉하니까 볼 맛도 더 납니다. 특히 나 자신이 이 넓은 땅의 정중앙에 기하적으로 딱 맞춰 들어가 있다는 쾌감을 즐겨보는 것도 짜릿할 거예요.

 

이렇게 보니 스쳐지나가는 것들에 즐거움이 많이 숨어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직 미처 발견하지 못한 기쁨에는 샘도 나네요. 바쁜 우리 일상, 잠시 멈춰서 아름다운 주변을 둘러보라는 고루한 얘기로 들으시면 오해예요. 즐거움의 밀도를 더하는 포인트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덜 퍽퍽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건너야 하는 곳에서 눌러앉아보는 것처럼요. 앞으로 피라미들을 보면 성북천 징검다리가 생각날 것 같아요. 그냥 그렇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