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하니64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일 정도로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 가장 마지막 부분에 짧게 한토막으로만 쓰여있는 현대 정권 파트는 항상 시시하게 훑고 넘겼다. 선생님들도 난이도가 낮음을 알았기 때문에 중간, 기말고사에 2000년대 정부는 문제로 내지 않았다. 사제간 합의된 이런 안일함이 무색하게 하루하루 무거운 역사를 감각하고 있는 요즘이다. 전 세계와 온 국민이 주시하는 사건이 현재 진행 중이다. 좀처럼 말이 없는 나의 말문을 더 막히게 한 사건이다. 이 소란의 말도 안 되는 정도를 헤아리자니 한이 없고, 주동자가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에 대해서 가늠해 보자니 아득해질 뿐이다. 계엄이 곧 무소불위의 권능이라 착각한 사람의 이번 내란 사건은 얼마나 많은 삶의 자전축을 틀어놓았을까? 아마존에 서식하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텍사스에 돌풍을 일.. 2024. 12. 17.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교집합과 차집합 ddp 개관 10주년 기념 특집 강연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교집합과 차집합》에 다녀왔다. 인스타그램 광고가 엄청 떴었다. 메타 프로모션 타겟 중 어떤 쪽에 내가 걸렸을까 궁금했었는데, 슬기와민, 신신이 연사로 등장하여 각각 세션을 맡았다고 하여 오래 망설이지 않고 신청. 마침 초가을에 방문했던 매거진라이브러리에서 열리는 강연이기도 하고, 참가비도 따로 받지 않아 부담 없이 참석했다. 시작하기 15분 정도 전에 도착해서 막 줄이 생길 때 입장했는데 나중엔 줄이 길어져서 행사 시작이 20분정도 지연되었다. 입장 시 커피와 다과 센스에 감동. 강연은 두 개의 부로 나누어져 1부에 슬기와민이, 2부에서 신신이 이끌었다. 두 팀에서 그동안 해온 작업들을 소개하고,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해서 이렇게 결과가 나왔.. 2024. 12. 2.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대담 사 - 사회자안 - 안점점 2024. 12. 1. 구태여 기구해지지 말기 운명에 관한 생각을 정신없이 늘어놓겠다. 읽는 이들은 게슈탈트 붕괴에 주의하시오. 자고로 뭇사람의 운명은 애당초 정해져 있다고 했다. 이 말에 동의한다. 그렇게 믿는 쪽이 편하다. 그래서 굳이 고르라고 하면 나는 운명론자다. 내가 이 늦은 새벽까지 운명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당연히 내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글쓰기의 샘이 고갈되어 전부 내팽개치고 싶어질 때, 실제로 쓰던 글을 던져버리고 침대로 향한다면 그것도 나의 운명이고, 처연한 욕심을 삼키고 마침내 글을 완성해서 금요일 저녁 글모임에 참석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운명에 관한 글쓰기를 두고 두 가지 경우로 나누는 행위조차 미리 정해져 있던 운명이 뿌린 자잘한 부스러기다. 만약 당신이 이 글을 지금 읽고 있다면, 그건 당신 몫의 .. 2024. 11. 24. 천신암 뜻밖에도 그 집은 예전에 점집이었다. 지도 앱 거리뷰에서는 일찍이 2011년의 이 동네 사진을 찍어놓았는지 손쉽게 당시 모습을 조회할 수 있었다. 화면을 최대로 확대해서 시커먼 대문 옆을 들여다보니 나무 간판이 비스듬히 매달려 있었다. 굵은 브러쉬로 거칠게 적은 ‘천신암'이라는 검정 글씨가 있었고, 불교에서 쓰는 ‘만(卍)'자가 바로 위에 붉게 칠해져있었다. 앱에서 조회 가능한 날짜 목록을 살펴보니 연도별로 2011년부터 지금까지 띄엄띄엄 열 개 버전의 거리뷰를 조회할 수 있었다. 2013년만 해도 여전히 ‘천신암'이었고 2014년엔 간판이 사라져 있다. 2016년, 대문을 새로 페인트칠한 것 같더니 17년 사진엔 집 한가운데가 폭삭 무너져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 집은 출입을 금한다는 테이프가 담장.. 2024. 11. 8. 손끝만 바라봤네 삼십 년 넘게 산 보람은 있다. 손가락으로 툭 끊어도 아프지 않을 거스러미를 골라내는 경험치가 쌓였다. 예전엔 관성을 이용해 한 손으로 두루마리 휴지를 원하는 칸만큼 끊는 것처럼 호기롭게 팍 당겼다가 손가락의 첫째 관절까지 거스러미가 잘못 뜯어지기도 했었다. 손가락과 그 손가락의 주인에게 미안했다. 소독은 애당초 모르고 살았으니 부위가 벌겋게 부은 적도 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지, 이것도 어린 날의 치기 또는 젊음의 패기라고 포장할 수 있을까. 뉘우침도 잠시, 머지않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얼얼한 부위를 멋쩍게 꾹꾹 눌러보고, 다시 미간을 찡그리며 앞니로 아랫입술을 깨물고, 애꿎은 손 끝에 입김만 호호 불었다. 이제는 녀석의 이름처럼 신경을 더 거스르기 전에 거스러미 발생에 슬기롭게 대처할 .. 2024. 10. 24. 이전 1 2 3 4 5 ···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