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만 바라봤네

삼십 년 넘게 산 보람은 있다. 손가락으로 툭 끊어도 아프지 않을 거스러미를 골라내는 경험치가 쌓였다. 예전엔 관성을 이용해 한 손으로 두루마리 휴지를 원하는 칸만큼 끊는 것처럼 호기롭게 팍 당겼다가 손가락의 첫째 관절까지 거스러미가 잘못 뜯어지기도 했었다. 손가락과 그 손가락의 주인에게 미안했다. 소독은 애당초 모르고 살았으니 부위가 벌겋게 부은 적도 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지, 이것도 어린 날의 치기 또는 젊음의 패기라고 포장할 수 있을까. 뉘우침도 잠시, 머지않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얼얼한 부위를 멋쩍게 꾹꾹 눌러보고, 다시 미간을 찡그리며 앞니로 아랫입술을 깨물고, 애꿎은 손 끝에 입김만 호호 불었다.

  이제는 녀석의 이름처럼 신경을 더 거스르기 전에 거스러미 발생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다. 우선 녀석이 싫어도 평생의 동반자임을 인정하는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 그리고 손톱깎이나 작은 가위가 없다면 그냥 얌전히 두기. 이 두 가지만 명심하면 가장 쉬운 길로 갈 수 있다. 물론 이를 순순히 따라 줄 자아가 많지 않기에 다음과 같은 팁도 있다. 짓이기듯 비벼서 끊어내기, 엄지와 검지손톱을 가위처럼 활용하여 절삭하기, 거스러미 시작 부분을 강하게 누르고 종이 찢듯 찢어내기 등. 하지만 손톱의 양 옆에 생기는 거스러미는 달리 방도가 없다. 손으로 잡아당기는 방법은 백이면 백 후회와 고통을 선사할 뿐이다. 이미 학습한 고통이지만 막상 마주하면 하찮을 것이라는 이유로 안일함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곤 예상보다 막강한 하찮음에 늘 후회를 하고 만다. 쓸데없는 생각일랑 집어치우고 작은 손톱깎이로 잘라내는 쪽이 상책이다.

  손톱 주위가 거스러미로 지저분해진 날에는 손가락을 살펴보면서 이 부분이 원래 말끔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고 생각한다. 분명 아기였을 땐 손톱 밑에 주름도 없고 보들보들했을 테고, 또 손톱은 얼마나 연약했을까? 가려운 곳을 긁어도 시원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면 보습과 영양 섭취가 부족했었던 걸까. 핸드크림은 이제 좀 습관적으로 바르기 시작했다 치자. 하지만 매일 챙겨먹기도 귀찮고 식사대용 만능 캡슐이 나오길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인데 얼마나 균형 잡힌 끼니를 목구멍 아래로 더 넘겨줘야하는 건지. 이 까다롭고 성가신 몸아, 원망하는 와중에 신통하게도 며칠 뒤 언제 그랬냐는 듯 매끈해진 손가락으로 돌아와 있다. 그동안 본능의 주도에 부화뇌동하며 술과 탄산과 단순당, 정제곡물, 가공육을 즐겼던 것 같은데 몸 안의 세포들이 어떤 마법을 부려 이 지저분한 것들을 다 청소했을까? 재료가 저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유능한 일꾼들은 수면과 합작하여 손톱 아래를 연마하고 새롭게 코팅하여 봐줄 만한 손가락을 다시 만들어냈다. 못난 주인에게 기회를 다시 준 보이지 않는 세포들에게 감사하다. 미안하지만 오늘 저녁은 라면과 김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