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암

사진은 아래 내용과 무관합니다.

 

뜻밖에도 그 집은 예전에 점집이었다. 지도 앱 거리뷰에서는 일찍이 2011년의 이 동네 사진을 찍어놓았는지 손쉽게 당시 모습을 조회할 수 있었다. 화면을 최대로 확대해서 시커먼 대문 옆을 들여다보니 나무 간판이 비스듬히 매달려 있었다. 굵은 브러쉬로 거칠게 적은 ‘천신암'이라는 검정 글씨가 있었고, 불교에서 쓰는 ‘만(卍)'자가 바로 위에 붉게 칠해져있었다. 앱에서 조회 가능한 날짜 목록을 살펴보니 연도별로 2011년부터 지금까지 띄엄띄엄 열 개 버전의 거리뷰를 조회할 수 있었다. 2013년만 해도 여전히 ‘천신암'이었고 2014년엔 간판이 사라져 있다. 2016년, 대문을 새로 페인트칠한 것 같더니 17년 사진엔 집 한가운데가 폭삭 무너져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 집은 출입을 금한다는 테이프가 담장과 대문에 칭칭 감겨있다. 하도 낡은 집이라 이미 붕괴된 곳 주변마저 아주 천천히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붕괴 위험>이라는 대문짝만 한 스티커도 곳곳에 붙어있다. 노란 바탕에 빨간 글씨라 적잖이 위협적으로 보였다.

  우리 집은 허름한 다세대 빌라 2층이라 자랑할 건 없지만 지대 자체가 높다 보니 그나마 작업실로 쓰는 작은 방 창문에서 보는 경치가 봐줄만하다. 바로 앞 주택촌 너머로 녹지와 어린이 공원이 빼꼼 보이고 멀리 그 뒤로는 학교와 관공서 건물이 군데군데 있어 탁 트인 경관이 보기가 좋다. 하늘도 잘 보여서 핸드폰 사진첩에 그간 찍어놓은 창밖 사진이 수십 장은 된다. 스토리에 전망 사진을 올려놓으면 좋아요도 제법 눌리는 편. 그런데 저 놈의 <붕괴 위험> 스티커가 도배된 집이 주택촌 한가운데 자리 잡아서 블랙홀처럼 관찰자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원하지 않아도 가장 먼저 저 을씨년스러운 집을 보게 된다. 애써 무시하려 멀리 눈길을 옮겨도 워낙 색채가 강해서 시야 아래쪽에서 존재감을 일렁거렸다. 군계일학이라는 말을 이럴 때에도 써야 하는지. 하도 답답해서 주민센터에 민원이라도 넣어볼까 하다가 자칫 불미스러운 일에 엮일 것 같아 사연이라도 먼저 알아보고 싶었다. 마침 얼마 전 퇴근길 마을버스에서 같은 빌라의 5층 불법증축 옥탑에 사는 아저씨를 만났다. 친한 사이는 아니어서 무슨 일 하시는 지도 모르지만 버스에 사람이 많아 부담스러운 거리에 마주 보고 서있게 됐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막걸리 냄새를 맡으며 멋쩍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저희 빌라에서 보이는 그 붕괴 위험 주택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 지 혹시 아세요?”

  “몰러, 나 이사오기 전부터 그랬어 거거는. 딴 건 모르겠고 고양이가 즈그 집처럼 굴러댕기드만. 밤마다 시끄러 죽겄어, 그짝 집에서도 들리는가?

  “네, 그래도 저는 소리는 견딜 만해요. 그냥 그 집이 너무 험하게 생겨서 창 밖으로 내다보기가 싫더라구요. 위험할 것 같기도 하고요.”

  “다달이 꼴랑 40만 원 내면서 뭘 그런 걸 따진댜. 아니지, 자네가 작년에 이사왔응게 50은 내겄구만."

  다른 이웃 주민들도 자세한 일은 모르는 듯했다. 그나마 3층 3호에 사는 버스정류장 근처 편의점 사장님 내외가 어제 그다지 달갑지 않은 힌트를 주셨다.

  “여지껏 사람이 적어도 두 명은 죽어나갔을 거야 그 집에서. 웬만하면 깊이 알려하지 마, 학생.”

  “그래요, 가까이 안 가는 게 좋아.”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더 가까이 가서 더 깊이 알고 싶어 진다. 내일은 주말의 시작이고 해도 막 넘어가는 중이라 아직 어둠이 찾아오진 않았다. 금요일의 남은 시간을 이보다 더 의미 있게 보낼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나갈까 하다가 왕복 7~8분은 될 곳이니 외투를 주섬주섬 챙겼다. 어떤 길로 가야 하는 지도 두리뭉실하게나마 머릿속에 있었고, 지도 앱에는 골목길이 어디까지 줄기를 뻗어있는지 세세하게 표시가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곳으로 진입하는 골목 어귀에 서니 여기가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좁고 음산했다. 하필 예닐곱 보 앞엔 죽은 쥐도 나뒹굴고 있다. 돌아갈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아직 살고 있구나’하는 정도의 불 켜진 집들을 네다섯 채 지나고 나니 그 집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한 장 한 장 쌓인 불쾌한 냄새의 레이어가 감지되었다. <붕괴 위험> 스티커는 워낙 오래된 터라 색은 바랬지만 예상보다 훨씬 크고 압도적이었다. 하긴 집에서 보일 정도면 이 정도 크기인 게 당연하다. 이런 게 덕지덕지 붙어있으니까 몇 달 전「파묘」에서 봤던 비슷한 색감의 부적들이 떠올랐다. 스티커가 붙어있던 대문과 담벼락을 훑고 옆쪽 담벼락도 쓱 보니 여기에도 빨간 스프레이로 ‘철거’, ‘붕괴’ 등의 글씨가 필요 이상으로 가득 쓰여있었다. 바로 옆집에서 카악- 툇 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 고개를 돌렸다.

  “여긴 뭐 하려고 왔대."

  “아 할머니, 여기 살고 계셨네요.”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본능적으로 놀라지 않은 척을 했다. 할머니는 가까운 버스정류장 벤치에 항상 앉아있는 분이었다. 거기서 꾸벅꾸벅 졸거나 사람 구경을 하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어쩔 때는 누렇게 뜬 살림살이를 여럿 챙겨 나와 콩나물이나 죽순 손질을 하던데, 이쪽의 우중충한 길로 들어와 보니 왜 집안일을 거기까지 나와서 하시는 지도 조금은 이해가 됐다. 지난번에 버스의 배차간격이 길어 집에서 키우는 화분에 자란 이름 모를 풀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이거 괭이밥이다,라는 대답을 해주셔서 말문을 텄고, 다음 날 감사의 의미로 본가에서 받아온 고구마와 무를 드렸었다.

  “할머니 성함도 안 여쭤봤었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춘교여. 이춘교.”

  “아, 춘교 할머니. 저는 경수예요. 요즘도 돌보미 선생님들 왔다 갔다 하세요?”

  “하도 귀찮게 해싸서 내가 끊어버렸다고. 내가 그 정도 나이도 아니고. 아직 혼자서 못할 게 없다고. 지지난 번 아지매가 싹싹하니 괜찮았는데 이번엔 웬 염병할 젊은 놈이 갑자기 와서는 청소해 준 답시고 집안을  들쑤셨다니께. 해야 되는 것만 하면 되지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냐고.”

  귀찮은 일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그렇게 궁금하진 않았다. 내 신경과 관심은 온통 바로 옆 저 집에 쏠려 있었다. 사실 골목 중간을 지나면서부터 긴장했는지 요의를 느끼기도 했고. 방광 위험과 붕괴 위험 사이에서 빈틈을 더 이상 내줄 수 없었다. 

  “할머니, 근데 이 집은 언제부터…”

  “거, 집주인 뒤지고 나서 이 모냥이여. 그 양반 자식들은 온다만다 맨날 말만 허고 꽁무니도 안 보여. 승질 나 죽겠다고.”

  할머니는 행인으로부터 그 집에 관한 질문을 들어야 오랜 묵언의 저주에서 해방되는 장승처럼 이야기의 물꼬를 터뜨리면서, 양 무릎을 짚고 현관문 앞의 디딤돌에 걸터앉았다. 디딤돌은 유독 한 부분만 엉덩이 모양으로 반들반들했다. 정류장 벤치에만 눌러앉아 계신 게 아니었구나 하며 놀랐다.

  “집주인이 여기 살던 분이에요?”

  “원래 부자였던 양반이 언제 갑자기 돈냄새를 맡더니 여기로 왔다니께.”

  “이런 데서 어떻게 돈냄새를 맡아요?”

  이야기가 재밌어질 것 같아 나는 옆에 있던 난간에 몸을 비스듬히 기댔고 할머니가 좀 더 신나게 이야기하실 수 있도록 팔짱을 끼고 최대한 궁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가 원래 무당집이었다고.”

 

  몇 년 전 추운 겨울날 천신암의 무당이었던 나비신녀라는 사람이 거기서 돌연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가족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으나 이미 사망한 지 한 달은 넘어 보인다는 말들이 오고 갔다. 당시 앰뷸런스와 경찰차가 여러 대 왔는데 워낙 좁은 골목이라 차량 진입이 어려워서 사이렌 소리, 멀리서부터 들것 옮기는 소리, 무전 소리, 전화 소리, 개 짖는 소리, 이 때다 하고 구경하러 나온 동네 꼬마들 떠드는 소리, 여긴 들어오면 안 된다고 윽박지르는 순경 목소리에 춘교는 바로 옆집에서 머리통이 웽웽 울려 곤혹스러웠다고. 게다가 며칠 뒤엔 동네 소문이 안 좋게 나서 덩달아 께름칙했다. 그렇잖아도 외관이 수려하지 않은 집이 한동안 빈 채로 있었다. 재개발 투자 목적으로 매매를 해둔 사람의 집이었는데 그는 공가 기간이 길어지자 고심 끝에 세를 낮췄다.

  얼마 안 있어 인근 대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는지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매물 문의가 늘어나자 사람을 불러 부랴부랴 청소를 했지만 싱크대의 수년 치 물때와 후드의 기름때는 어떤 장비와 화학 약품으로도 해결되지 않았다. 차라리 새로 공사를 하는 편이 마땅했으나 집주인은 이깟 거에 돈 한 푼 쓰는 게 그렇게도 아까웠는지 기어코 원형을 보존했다. 그러나 더 이상 옥색 변기와 세면대가 붙어있는 화장실과 체리색 몰딩, 누렇게 변색된 주방 상하부장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진 학생들은 없었다. 

  청소한 기물들에 다시 뽀얗게 먼지가 쌓일 무렵인 이듬해 봄이 되자 새내기 입학생이 가족들과 함께 집을 보러 왔다. 듣기로 강원도 고성에서 온 모양인데 새내기 기숙사 신청에서 기준에 미달하여 탈락한 듯했다. 학생의 아버지는 대충 둘러보곤 ‘우리 집보다 낫구먼.’ 하며 그 길로 계약을 했다. 학생은 옆에서 아무 말이 없었다고.

 

  “할머니, 어떻게 그렇게 기억을 잘하고 계세요?”

  할머니는 대답대신 구겨진 몸을 일으켜 현관문을 열면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오묘한 할머니 냄새에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집에서 시도 때도 없이 계속 먼지를 쓸고 닦는지 내부는 생각보다 깨끗했다. 할머니가 나를 이끈 곳은 고동색 알루미늄 샷시로 된 작은 창문 앞이었다. 오랫동안 열지 않은 창문을 열어주는데 마찰음이 너무 커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너머로 바로 그 집 창문과 위태롭게 매달려있는 세면대가 어렴풋이 보였다. 내부는 컴컴했지만 화장실이 분명했다.
  “이것보다 더 커다란 창이 안방에도 있다고. 그날 저녁에 뭐 먹는 지도 다 아는데 기억 안 하고 배기겠어? 튀지만 않았지, 똥 싸는 소리랑 냄새까지도 다 들린다고.”

  “말이 나와서 그런데 죄송하지만 화장실 한 번 쓸 수 있을까요?”

  “지랄하고 있네.”

  …

  나는 씻은 손의 물기를 바지에 슥슥 닦으며 한 번 더 물었다.

  “안방은 옆집 어디로 이어진 거예요?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뭘 그런 게 궁금해 여기 앉아있어 그냥.”

  할머니는 솜이 푹 꺼진 사각방석을 내 앞으로 내던졌다. 잠시 후 할머니가 물을 한 컵 따라주며 다시 회상했다.

 

  1학기가 끝나갈 때 즈음 그 학생은 춘교와 퍽 잘 지냈다. 지역에서 노인들과 어울려 지내던 아이라 그런지 어르신 대하는 법을 잘 알고 지낸 듯했다. 상대가 듣거나 말거나 인사부터 건넸다. 오늘의 새로운 대화를 억지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 못다 한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나갔다. 이런 화법이 춘교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젊은 사람과 벽을 세우지 않고 지낼 수 있다는 걸 학생을 보며 깨우쳤다. 양손자라고 생각하고 가끔 반찬도 일부러 넉넉히 해서 나눠주고 굴비라도 굽는 날엔 괜히 한 마리 더 팬에 올렸다. 예전에 무당이 살 땐 하도 불길하고 없던 액이 옮아 붙을까 봐 밤낮없이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도 무서워서 쥐 죽은 듯이 살았는데 젊은 남자가 옆에 있으니 아주 든든했다. 게다가 학생은 예의를 아는 사람이라 자기가 받은 것 이상으로 할머니가 힘쓰는 일을 도맡아 도와줬다. 배달온 쌀 포대도 번쩍번쩍 잘 들었고 무거운 화분을 여기 놓자, 저기 놓자 변덕을 부려도 묵묵히 옮겨놓고선 ‘이전보다 훨씬 예쁜데요.’ 하면서 수줍게 넉살도 부리기에 고놈 참 쓸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별안간 색시를 어디서 얻었는지 어느샌가부터 어여쁜 처자 한 명이 집에 들락날락했다. 전공이 같은 학생이라고 했다. 춘교는 고 순박한 것들이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는 게 귀여웠다. 먼저 떠나보낸 영감도 생각이 났다.(이 지점에서 할머니는 갑자기 방문 위에 걸려있던 영정에 대고 된소리를 늘어놓았고 나는 황급히 이야기의 방향을 다시 돌려놓았다.) 식구가 늘어난 기분으로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새벽에 옆집에서 섬뜩한 귀신 우는 소리로 횡설수설하는 헛소리가 할머니 잠을 깨웠다. 

  “...열세 개다. … 아니 서른한 개야.”

  이런 식으로 숫자를 대여섯 개 읊었더랬다.

 

  “아 처음엔 나도 당최 무슨 말인지 무슨 숫자인지 누가 그러는 지도 못 알아들었어. 들어보니까 그 처자 목소리였다고. 그 후로도 앵알앵알 몇 날 며칠을 그러더라니께. 그러다가 또 귀신 우는 소리로 ‘여섯 개 가져와…. 아니 여덟 개 가져와….  열세 개…. 뭐시기 몇 개 더…….’ 이 지랄하길래 잠을 잘 수가 없어. 거기다가 같은 말을 너덧번은 되풀이했다고. ”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뒤에 갸들이 그 숫자로 로또를 사서 어떻게 됐다나… 후에 둘의 행방은 동네 사람들 중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단지 거기에 죽은 나비신녀의 원혼이 아직 매달려있었네, 뒤늦게 번지수 잘못 찾아온 다른 귀신이네, 하면서 온갖 영적인 추측만 무성할 뿐이었다. 어떤 사람은 일부러 찾아와 대문 앞에서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신거리기도 했다. 그 귀신이 도대체 왜 수년 간 옆집에서 소음과 두려움에 고통받은 춘교 본인이 아니라 아직 임대차계약 기간도 안 채운 그 학생에게 축복을 내렸는지는 아직까지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춘교는 소식을 가장 마지막에 들었던 무리 중 한 명이었다. 처음엔 인사도 없이 짐 싸고 나가버린 아이들이 조금은 야속하면서도 잘된 일이라 생각했으나 그날 밤 잠자리에서 복잡하고 묵직한 감정의 폭풍을 감내해야 했다.

  문제는 춘교보다도 소문을 더 늦게 들은 그 집 집주인에게서 시작되었다. 학생이 떠나고 몇 달 뒤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세입자가 이미 계약을 마치고 입주했는데 집주인이 일언반구도 없이 그 집에 들이닥쳤다. 그는 당황한 세입자의 표정은 살피지도 않은 채 다짜고짜 우리 아들내미가 갑자기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오게 됐다, 아들내미가 워낙 독립적이어서 혼자 살고 싶어 한다, 이 집은 워낙 낡아 빠져서 세를 놓고 웬만하면 터치 안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그러지 않냐, 아직 미혼이시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됐고 나가달라, 보증금은 중개인 통해서 알아서 받아라, 구구절절하면서 일방적으로 세입자를 쫓아냈다. 그 후로,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같은 인테리어로 꾸며진 그 집에 결국 집주인이 갑자기 들어앉아 살게 됐다. 그전까지 반포 자이 몇 동 꼭대기층에서 살고 있었다 그랬는데, 음침한 구옥에 몸을 뉘이려니 좀이 좀 쑤시겠나. 꿈 한 번 꾸겠다고 입주하고 몇 주 동안 자는 내내 끙끙 앓았다고. 춘교는 그 젠장맞을 소리에 또 잠 못 이뤘다. 그런데 이 양반, 머리가 좀 모자랐는지 지가 자면서 내는 소리를 지가 들을 수 있을까,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헛소리로 무언가를 중얼대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코도 대차게 골았는지 목젖까지 바짝 물기가 말라 있었다. 

 

  “집주인이 그때 자면서 뭐라고 했길래요?”

  “그것까지는 나도 잘 모르고, 자네가 알 것도 없네.”

 

  며칠이 지나고 집주인은 드디어 머리를 썼는지 어디서 낯선 젊은이를 한 명 데리고 왔다. 그러곤 대뜸 밤에 본인 옆자리에 재우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제 집에서 잠만 자도 하루에 10만 원씩 준다는 공고를 어디에 써붙였다는 것이다. 엿듣고 있던 춘교는 열이 뻗쳤다. 누구보다도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옆집에 기거하는데 먼저 자기에게 부탁을 하지 않은 집주인이 영 괘씸했다. 젊은이가 처음 온 날 작은 실랑이가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첫째, 머리카락이 얼마 안 남은 육십 대 아저씨가 10만 원을 줄테니 자기 침소에서 잠을 함께 자자, 하는 것이 일단 너무나 수상쩍었고 둘째, 세상에 잠만 자는 일로 하루 10만 원을 뚝딱 벌 수 있다는 말을 누구도 바보같이 믿기는 어렵기 때문이었다. 젊은이가 바보는 아니었는지 이것저것 캐물었다. 집주인은 자기도 상식 밖의 더러운 사람이 아니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며 얼굴을 붉혔다. 어떤 말을 해도 수상한 기운을 떨쳐내기 어려워지자 끝내 설득에 실패한 집주인은 억울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신체 접촉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과 이를 어길 시 지금까지 지급한 금액의 두 배를 추가로 지급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 그제야 젊은이가 이부자리를 펴는 꼴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150만 원을 허공에 날릴 때쯤, 집주인은 손 안 대고 코 푸는 한량을 보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유를 말하자니 만약 정말 복권에 당첨되면 거액을 요구할 것이 뻔하고, 말 안 하자니 각서까지 쓴 마당에 생돈 10만 원을 매일 버리는 상황이 못마땅했다. 꿈도 안 꾸고 새근새근 잘도 자는 젊은이를 옆에서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던 그는 젊은이를 잠꼬대가 나올 정도로 피곤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집주인은 2만 원을 더 얹어줄 테니 매일 집 청소와 수리를 하고 잠자리에 들라는 제안을 했다. 젊은이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럴 거면 얹는 돈을 7만 원으로 요구하자 집주인은 분기가 탱천 했는지 뒷목을 잡으며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다. 잠시 뒤 한 발 물러난 젊은이의 회유로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며 결국 5만 원을 얹는 쪽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미 쉽게 번 돈의 달콤함에 절여졌던 터라 젊은이 딴에 이 호구 같은 기회를 놓치기엔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집주인은 제 말로는 아량을 베푼다고 자기 직전 두 시간 정도만 일을 시켰다. 처음엔 무얼 지시할지 몰라 진공청소기를 돌리거나 설거지, 쓰레기 분리수거 같은 집안일만 요구했다. 하지만 젊은이의 예상보다 작업 난이도는 점점 높아졌다. 하긴 85년에 준공하고 나비신녀가 입주했던 07년도에 딱 한 번 수리한 이후로 방치한 거나 다름없었던 집이다. 점점 내부가 깨끗해지면서 일상 그 이상의 영역들, 이를테면 문지방 틈부터 창틀, 화장실 곰팡이, 썩은 장판 밑, 주방 선반, 싱크대, 툇마루 등의 먼지 청소와 낡은 문고리, 조명, 전선, 콘센트, 커튼봉, 방충망 교체, 집안 곳곳의 삭은 실리콘을 제거하고 새로 바르기, 우레탄폼으로 외풍 막기, 마당 수도관과 보일러관 동파방지작업 등 집 곳곳의 보수까지 닦달했다. 젊은이는 이런 건 사람 불러야 되는 전문적인 영역 아니냐고 투덜거렸지만 그는 안 할거면 관두라고 되려 역정을 냈다. 210만 원을 받았을 때쯤 온라인 불법 바카라에 돈을 부었던 참이라 젊은이는 튀어나올 뻔했던 욕지기를 되삼키고 눈앞의 중년을 쩐주로 모실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젊은이가 360만 원째 받는 날이었다. 놀랍게도 그 낡은 집이 회춘을 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더 청소할 곳을 찾는 일이 여간 쉽지 않았다. 젊은이가 시설 보수에 도가 튼 건지 몰라도 예전에 불렀던 청소업체도 실패했던 오래된 물때, 기름때, 곰팡이들까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단지 거기엔 그의 분노만이 대신 서려있을 뿐이었다. 

  “내가 생각해 보니까 저기 저쪽은 신경을 안 썼구만. 오늘부터는 저 우에 조명이랑 저쪽 구석구석 먼지나 좀 닦아봐.”

  집주인은 손가락으로 목재로 된 천장을 가리키며 빙글빙글 웃었다. 고개를 조금만 젖히면 아직 일거리가 이렇게나 남아 있었다는 것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속으로 생각하면서 이죽거렸다. 천장도 옛날 방식으로 짜인 그대로 남아있던 터라 서까래와 도리, 대들보로 엮여있었다. 조명이 있던 부분을 제외하면 손길이 닿지 않아 먼지가 기겁할 만큼 묵어있었다. 

  “사장님, 제가 키도 큰 편이 아닌데 아무리 사다리를 쓴다고 해도 형광등, 천장이랑 대들보 먼지까지 닦는 건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 보이지도 않아서 사장님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으면서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아요?”

  “아, 몇 날며칠을 다 닦아 놓으니까 집이 너무 깨끗해져 버렸는데 어떡해. 깨끗하니까 천장 먼지도 이제야 보이게 됐구만. 한두 시간 청소하고 잠까지 자고 가는데 하루 15만 원 받아 가면 자네가 훨씬 이득 보는 장사 아니야? 이젠 뭐 밥까지 줘야 돼?”

  “아, 알겠는데 팔이랑 목,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요. 오늘 하루만 좀 쉴게요.”

  “아, 관둬 관둬, 싫으면 그만하든가. 뭐 사람이 없어서 데리고 있나? 아버지 같이 잘 챙겨줬더니 이제 와서 다른 소리야, 쯧.”

집주인은 호기롭게 허세를 부렸으나 사실 아까부터 떨리고 있던 젊은이의 손을 보고 덜컥 겁이 났다. 젊은이는 엊그제 영혼을 건 바카라 역배팅이 처참히 물거품이 되었음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한참을 투덜투덜거리더니 결국 이미 회색으로 변한 걸레를 또 빨았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니 영 낡은 목재들이라 나무 가시에 찔릴까봐 빠르게 작업을 할 수도 없었다.

두 시간 동안 어정쩡한 만세 자세로 형벌을 받은 젊은이는 씻을 겨를도 없이 걸레를 멀리 팽개치며 침구를 펼쳤다. 다음 판 한몫만 따내면 이제 이 개 같은 집 다신 안 온다고 중얼거리며 몸을 이불속으로 파묻었던 젊은이는 그 즉시 곯아떨어졌다. 집주인은 젊은이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다가 너덜너덜해진 걸레를 화장실 바닥에 휙 던졌다. 앞으로 이 짓을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할지, 이제는 다른 수를 써야 할지 궁리하다가 녹진한 땀내를 풍기는 젊은이 옆 침대에 누웠다. 몇 밤째 깊은 잠을 못 잔 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좌로 우로 몸을 뒤척이던 그의 기척이 어느새 잠잠해졌다.

  세 시간 쯤 지났을까, 젊은이의 입이 빠져나가려는 말풍선을 움켜쥐고 있는 듯이 옴싹거렸다. 

  “ㄷ, ㄷ….”

  디귿 소리를 내며 마침내 잠꼬대가 은밀하게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적어도 며칠은 알아들을 수 없게 웅얼거리면서 변죽을 올리다가 숫자를 뇌까렸을 텐데 그는 단어와 문장을 단번에 내뱉는 기염을 토했다. 

  “ㄷ, 대, 대드보…. 너무 힘드로…. ”

  집주인은 고대하던 그 순간이 목전의 현실이 되었음을 깨닫고 두 눈을 번쩍 떴다. 3초 동안 상황 파악을 마친 후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도 골백번 해온 양 짐승 같은 반사신경으로 베개 밑에 감춰둔 작은 메모지와 볼펜을 꺼내 들었다. 

  “대드보…. 허리 아허….”

  “뭐, 뭐. 왜 갑자기 대들보 타령이야. 왜, 왜, 왜!”

  집주인은 심장이 벌렁거리는 와중에 목소리를 크게 내지도 못해 미칠 노릇이었다.

  “대드보…. 아허…. 조시매….” 

  “뭐, 뭘 조심해,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번호나 말해보자, 얼른!”

  집주인은 지난 몇 개월간 뜬 눈으로 지새운 밤을 생각하며 감격으로 벅차올랐다. 마음속에 감추려 했던 말이 달달 떨리는 턱을 넘어 조용하지만 소란스럽게 튀어나왔다. 

  “대드보…. 조시매…. 매, 매…. 마…. 마흥 넷.”

  눈 감은 젊은이 입에서 숫자가 나왔다. 집주인은 이제 자신의 심장이 어디서 뛰고 있는지, 어느 정도의 크기를 갖고 있는지, 방금 뿜어 나온 피가 어디까지 도달했는지도 상세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참, 알겠어, 조, 조심할게! 오늘로 저, 저, 잡일은 이제 끝낼게. … 잠깐, 근데 왜 벌써 사십사를 부르냐. 그, 번호가 45까진데 왜 사십사를 불러. 나 원.”

  “사…. 삼십, 삼십 일….”

  “옳거니! 사십사부터 시작이었구나.”

  잠시 정적이 흐르자 집주인은 안달이 났다.
  “아, 요, 요 새파란 게 정신이 나갔나. 왜 이렇게 뜸을 들여. 미치겠네, 깨울 수도 없고.”

  “스물 둘….”

  컴컴한 와중에 집주인은 이어서 떨리는 손으로 2를 두 개 끄적였다. 

  “가만있자, 그럼 이제 세 개 남은 거지. 후우. 자, 자. 마음고생도 이제 끝내자.”

  “…. 열 넷….”

  “열 넷이라. 이상하네, 당첨 숫자 간격이 이렇게 고른 날이 없었는데. 뭐 어쨌든 그때 대운 찾는 답시고 돌팔이 무당년 농약 타멕이고 잘 된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라도 팔자 고쳐야지.”

  “여섯….”

  “요즘은 또 같은 수로 몰아 써서 전부 당첨되는 게, 그, 그 대박 터지는 거 던데. 자, 자, 자, 마지막!”

  “셋….”

  “그래, 이, 이제 요 옆집, 옆옆집까지 다 사들여야겠다.”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완성하고 3초가 지나자 안방 천장에서 썩을 대로 썩은 대들보가 쩌억- 하고 쪼개지며 무너져 집주인의 정수리를 육중하게 내리쳤다. 옆에서 취침하던 춘교는 이 소리에 놀라 화들짝 깨버렸다. 곧바로 균형을 잃은 서까래들도 우지끈- 하더니 힘겹게 받치고 있던 위쪽 무게를 견디지 못해 하나둘 무너졌고, 이윽고 용마루도 반쪽이 났다. 엄청난 흙먼지를 내뿜으며 기와지붕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집주인은 붉은 피로 얼룩진 쪽지를 손에 쥔 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야밤의 소란에 또다시 동네가 떠들썩해졌고, 이번엔 소방차도 출동해 진입할 수 없는 골목 앞에서 한참을 버둥거렸다. 얼마 뒤 경찰은 추가적인 범죄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종결했고 집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자식들이 한바탕 또 소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이 보잘것없는 집을 두고서는 전에 없던 가족애를 내세우며 서로 떠미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졌다. 사태가 정리되고 옆집이 지금의 모습으로 아슬아슬하게 남아있기까지 적어도 한 계절은 보낸 듯하다.

 

  “할머니, 그러면 그 잠꼬대했던 사람은 어떻게 된 거예요?”

  “염병, 죽었겠지. 알 게 뭐야. 그때 우리 집도 무너질까 봐 걸음아 날 살려라 집밖으로 뛰쳐나왔다고. 안팎에 먼지는 또 얼마나 뒤덮었는지 사흘을 쓸고 닦아도 모자랐다니께. 요, 요기 창문도 깨지고 자다가 창자 빠지게 놀랐다고, 원”

할머니는 우리네 할머니들이 그러하듯, 이미 깨끗한 바닥을 괜히 주변에 있던 헝겊으로 끊임없이 훔쳐내며 말했다. 바로 옆집 정도의 일이면 몇 년이 지나도 이렇게 기억에 선할 수도 있겠구나, 하며 나는 할머니의 무아지경에서 빠져나왔다. 당신도 역시 그날 밤 진풍경에 다시 녹아든 듯 마지막엔 공허하게 헝겊에 빠져나온 실오라기를 쳐다봤다. 이 이야기는 집에 돌아가서 내 블로그에 기록해 봐도 좋겠다. 기억이 조금이라도 흐릿해지기 전에 얼른 노트북 앞으로 가야겠다. 할머니가 건네준 물 잔의 마지막 모금을 마시고 앞으로 쓱 밀었다.

  “할머니. 덕분에 궁금증이 좀 풀렸어요.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저 찾아주세요. 두산빌라 2층 1호예요.”

어느새 밤이 깊어 있었다. 귀뚜라미 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들렸다. 잰걸음으로 비좁은 골목을 다시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나는 통유리로 된 출입문 위에 심심한 명조체로 새겨진 ‘두산빌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괜히 생각했다.

 

  그래, 서울에서 이 정도면 살만한 집 아니겠어? 

  이젠 그 집을 봐도 노여운 마음을 좀 내려놓을 수 있겠어.

  그 집주인을 불쌍하다고 해야 할지.

  자식들은 왜 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로또 이야기를 아예 못 들어봤으려나?

  하긴 자식들한테도 말 안 했을 것 같긴 하다.

  잠깐, 그런데 잠에서 깨기 전인데 어떻게 춘교 할머니가 그 숫자를 다 알고 계셨지?

 

  춘교는 좁은 골목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경수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헛기침을 하며 현관문을 닫았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손님이라 영 낯설었다. 다시 문을 열곤 목구멍 근처에서 들끓는 가래를 끄집어내서 멀리 뱉은 뒤 문을 살며시 닫았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현관의 걸쇠 두 개와 자물쇠까지 모두 채웠다. 바닥에 붙어있는 마지막 걸쇠까지 잠근 후에야 휘청거리며 안방으로 들어왔다. 돌침대에 말라빠진 몸을 누이려다 불현듯 무언가 생각난 듯이 벌떡 일어나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춘교가 침대 밑으로 손을 뻗었다. 한참을 버둥거리다 겨우 손아귀에 잡힌 것을 부욱 뜯어냈다. 청테이프를 여러 겹 발라둔 검은 비닐봉지였다. 테이프를 뜯어내려 했는데 지문도 거의 남지 않고 손톱은 닳을 대로 닳아서 테이프의 시작 부분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둘둘 말린 테이프를 반대방향으로 얼레 감듯 떼어내자 검은 비닐봉지에서 무명으로 짠 작은 싸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춘교는 끈적임이 남은 손가락으로 싸개를 조심스럽게 풀어헤쳐 속에 있던 네모난 통장을 집어 들었다. 지네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 ‘0’과 숫자들을 들여다보니, 썩은 목재 기둥이며 기왓장 더미에 파묻혀 옴짝달싹 못하던 젊은이의 눈망울과 거기서 흘러나온 축축한 물기, 코로 거칠게 내쉬던 숨, 입 안에 가득 차 있던 흙먼지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그때 춘교가 표정을 알 수 없는 그 얼굴 위로 내리쳤던 기왓장의 작은 돌조각 역시 싸개 안에 들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