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을 부딪히며 탓탓탓

주제 : 내 탓 네 탓

 

“내가 맞았고, 너가 잘못했어. 그런데 괜찮아.” (토닥토닥)

 

<요즘 친구/연인의 화해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숏폼 영상. 오해 또는 성격 차이로부터 갈등을 겪은 두 사람이 마주 서서 눈을 바라본 채로 위 대사를 동시에 또박또박 읊는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1. “내가 맞았고” 를 말하며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팡팡 친다.
2. “너가 잘못했어” 를 말하며 바로 앞에 서 있는 상대방을 향해 손가락질한다.
3. “그런데 괜찮아” 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짓는다.
4. 서로를 껴안으며 등을 토닥여준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동시에 말하기. 그래야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두 사람의 집요한 주장이 모두 참이 되니까. 두 번째는 스킨십. 가벼운 포옹으로 말과 목소리가 줄 수 없는 감정을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상황에서 이 방법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 그렇진 않을 것 같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몸소 갈등을 일으켜 실험을 하고 싶지는 않다. 말 한마디를 나눈다고 해서 모든 앙금이 사라진다면 전쟁도  일어나지 않겠지. 낙관은 내려놓고 열이 식은 머리로 갈등의 과정을 복기해 보는 것이 더 낫다.  

 

  그래도 일리는 있다고 본다. 장난스럽게 편집된 숏폼 영상이지만 어쩌면 이건 관계의 본질을 아우르는 문장일지도 모른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아무리 잘 관리한다고 해도, 연인 사이의 마찰이나 우정에 금이 가는 것은 대부분 통제 가능한 범위 바깥에서 뜻하지 않게 발생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외계인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잘 지내는 일이 오히려 더 놀랍고 대단한 기적이라고 하지 않나. 사람들은 은연중에 상대방이 1%라도 과실이 있다면 책임을 묻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내가 1%라도 억울하다면 그것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다행히 우리는 외계인인 동시에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이 본능적인 욕심을 자체적으로 희석할 수 있다(찝찝함은 남기 마련이다). 그런데 단순해 보이는 이 한 마디로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다”라는 솔직한 마음을 주저 없이 드러내면서 나에게는 순도 높은 안정감과 쾌감을 맛 보여주고, 그러면서도 “괜찮다”는 말과 포옹으로 상대방에게도 그 안정감을 전달한다. 이는 관계의 불씨가 꺼지는 것을 막아줄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 혹은 연인과 사생결단의 갈등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사소한 오해에서 불화가 생겼다면, 아마 대부분 아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난 분명히 평소와 다른 점도 없었고 심지어 섭섭하지 않도록 배려해서 말 해줬는데 걔가 나한테 왜 그랬을까? 물론 내가 좀처럼 연락을 먼저 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할 것까지 있어? 정말 서운하네. 왜 내 진심을 몰라주지?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나? 그래도 그냥 나한테 먼저 사과했으면 좋겠다. 너무 서운하다. (...) 하지만 우린 대학 생활을 같이 했던 좋은 친구였잖아. 공강 땐 편의점에서 1+1메뉴를 찾아서 나눠 먹고 점심시간이 되면 학생 식당 음식이 맛없다면서 라면도 같이 먹고. 앞니에 고춧가루가 묻었으니까 다음 시간에 잠 깰 때 먹으라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도 해주던 사이인데. 성격은 물론이고 서로가 잘 되길 바라는 점도 누구보다도 잘 알아. 그래서 이런 일 때문에 관계를 그르치고 싶지 않아.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는 녀석이지만 좋은 사람이야. 계속 잘 지내고 싶어. 걔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대립하는 상대의 마음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직접 그 입장에서 똑같은 상황을 겪어야만 하니까. 그러다가 명확한 해법을 찾는데 성공하기보단 어렴풋이 짐작하며 공감해 볼 뿐이다. 중요한 건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고 그걸 전달하는 것이다.

 

  비슷한 또 다른 영상에서는 “그런데 괜찮아” 대신 “그래도 내가 미안해.” 라든가, 아예 정반대로 “내가 잘못했고 네 말이 다 맞아, 다 내 탓이오.” 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니면 위 요소들이 뒤섞여 있기도 하다. 어쨌든 결론은 다 비슷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말이 맞지만 그렇다고 네 말이 틀리기만 한 건 아닌데, 감사하게도 너도 내 탓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린 다시 잘 지낼 수 있어. 나도 너 탓만 하진 않을게.’ 갈등 하나하나 마다 얼마나 복잡한 맥락과 사연을 담고 있을까? 우리는 전지자, 랍비, 솔로몬이 아니기 때문에 서투르다. 누구 탓인지 가리기 위해선 토론 대회까지 열어야 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런데 괜찮아.” 하면서 분위기 누그러뜨릴 한두 잔의 깊은 술이나 커피를 곁들이면 어떨지. 마지막은 꼭 포옹하며 토닥여주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