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응급상황'을 주제로 쓴 글. 난 왜 공익 광고 같은 글만 쓰게 되는가..

 

  생각해 보니 CPR을 아주 오래전부터 배워왔다. TV드라마나 영화에서 드문드문 접할 때까지만 해도 효과를 의심했었다. 인공호흡 몇 번, 가슴 압박 몇 번 한다고 정말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그러다가 고등학교 특별 활동 시간에 CPR 교육을 듣게 되면서 골든 타임 내에 이를 수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학교나 관공서에 막 보급되던 심폐소생술 학습 인형 ‘애니(Anne)’를 활용해서 모의로 실습까지 해볼 수 있었다. 두꺼운 가슴뼈 아래에 있는 심장을 마사지하기 위해선 손꿈치에 체중으로 강한 힘을 실어 깊이 가슴을 눌러주어야 했다. 왜 심폐소생 과정에서 갈비뼈가 부러질 수 있다고 하는지 그제야 어렴풋이 실감했다. 특활 시간은 ‘노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집중력이 바닥난 나와 친구들은 양호선생님 몰래 애니를 괴롭히며 키득거렸지만 그 후론 CPR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입대하니 군대에선 훈련 때마다 수시로 CPR교육이 포함되어 있었고, 제대 후에도 예비군, 동원 훈련 때마다 심폐소생술을 실습했다. 20대 때 이후로는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는 매년 교육을 듣고 있다. 얼마전 민방위 훈련에서 오랜만에 다시 CPR을 교육받았다. 민방위 훈련소에서는 다른 재난 훈련은 약식으로 진행하며 시청각 자료로 대체했으나 심폐소생술만큼은 제대로 실습을 시켰다. 그만큼 활용빈도가 높아서일 테다. 실제 상황에서 응급처치자는 가슴압박을 하며 수 분 동안 반복적인 행동을 멈추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보기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땀도 많이 흐른다. 119 도착까지 심장 압박을 하던 사람이 탈진하는 경우도 그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CPR의 절차와 방법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아마도 실제 경험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생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보완되는 것 같다. 인공호흡이 필수였던 처음 교육 내용과 달리, 특정 상황에서는 인공호흡을 생략하고 가슴 압박만 진행하라고 교육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강조되는 사항은 심장제세동기(AED, 심장 자동충격기)의 활용이다. 지하철역은 물론이고 이제는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길거리에서도 심장제세동기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최근 교육 내용에는 CPR이전에 특정인을 지목해 인근에 비치된 제세동기를 가져와달라고 요청하는 절차가 포함되어 있다. 동시에 다른 사람에겐 신속한 신고를 요청하여 119에 최대한 빨리 환자를 인계한다. 얼마 전에는 가슴의 정중앙과 명치의 사이를 압박하는 쪽이 더 효과적이라는 내용도 배웠다. 

 

  이제는 뉴스에서 갑작스런 심장마비나 사고로 의식을 잃은 자를 심폐소생하여 구조하는 실제 CCTV화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충격적인 상황이지만 일면식 없는 사람이어도 소중한 생명이라는 생각에 처치자는 서슴없이 팔을 걷고 나선다. 퇴원한 생존자가 구조자에게 감사해하는 보도 내용을 보고 있자니 넘치는 인류애에 나도 가끔 울컥하여 눈물을 훔칠 때가 있다. 모두에게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응급처치에도 환자가 의식을 되찾지 못하면 구조자 역시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사로잡힐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골든타임’, ‘CPR’과 같은 단어에 대한 학습이나 CPR 교육의 대중화가 그 효과를 점점 더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응급처치가 필요한 상황을 마주하지 않는 쪽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우리의 앞날은 미지의 세계인지라 모두들 최소한 CPR만큼은 철저히 학습하여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