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전선 1mm를 사수하라

지금은 사라진 야마사키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 귀하다...

 

  늑대의 유혹, 동방신기와 버즈 민경훈의 샤기컷. 그로부터 촉발된 각종 헤어컷들의 향연. 개성은 제각기 달랐지만 그 교집합엔 기다란 구레나룻(정식 명칭은 ‘옆머리’가 맞다.)이 있었다. 그만큼 2000년대 중・고 남학생들에게 두발 규정으로부터 구레나룻 기장을 사수하는 일이란 알량하지만 중차대한 문제였을 것이다. 당시 우리 동네에서는 건대 인근에 위치한 <야마사키> 미용실이 잘 나가는 형들과 멋쟁이들의 산실로 유명했었다. 커트 비용은 당시 시세의 3~5배로, 모두가 만족할 만한 머리 스타일을 극진한 서비스와 함께 선보인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호주머니에 한 푼도 없는 코흘리개 학생들은 꼬깃꼬깃 가져온 사진과는 사뭇 다른 뚜껑으로 동네 상가 미장원 문을 열고 나오며 가슴으로 눈물을 삼켰다는 후문.

 

  우리들의 구레나룻을 지키고자 했던 열망은 중학교 때가 절정이었다. 모교가 아예 일말의 터럭도 용인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기준이 애매모호한 상고머리까지는 허용한다고 하여 학생들을 각자 다니던 미용실의 단골로 만들었던 학교였다. 나는 기준에 만족하지 않는다며 검사에서 불합격했고, 결국 연속 3일을 미용실에 왔다 갔다 한 적도 있었다. 학생들의 생김새가 워낙 다양하고 머리카락도 서로 다른 모질과 모량을 가졌기 때문에 “윗머리 기장 몇 cm, 귀 중간 몇 cm, 눈썹 위 몇 cm …” 따위의 획일적인 규칙으로는 형평성 있는 두발 검사를 할 수 없었다. 가만 보면 귀가 긴 아이들은 구레나룻도 더 길게 느껴졌다. 머리카락에 곱슬기가 있으면 직모 머리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같은 머리카락 길이라도 훨씬 짧아 보이기도 했고, 위급한 상황에 그들은 구레나룻을 귀 뒤로 넘기는 트릭도 발칙하게 부릴 수 있었다. 반면 나 같은 직모인들은 조금만 머리카락이 자라도 지저분하고 덥수룩해져 단속의 주요 타겟이 되었다. 교내 두발 규정에 반발한다며 또래 사이에 반삭발 챌린지가 유행했을 때가 있었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많은 별명과 칭호들–고슴도치, 성게, 정전기, 헬멧, 하이바, 솜사탕 등 –을 거머쥔 채, 비슷한 시기에 18mm로 머리를 밀었던 아이들 중 가장 먼저 다시 불합격을 통보받았다. 같은 머리 길이여도 누군 걸리고 누군 안 걸리고가 달라지니 우리는 무사통과와 회초리 찜질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매일 같이 해야 했다. 여기서 외줄을 손에 거머쥔 사람은 단연 학생주임 선생님이었다.

 

“야!! 태범이 떴다!"

 

  김태범(가명) 선생님은 최민수와 호아킨 피닉스를 섞은 듯한 얼굴을 가진 분이었다. 사나운 눈매와 발달한 하관에 목소리는 중저음이요, 상・하체는 군살 없이 고루 발달했으니 한 마디로 우리 삼촌이었으면 세상 든든했을 것 같은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그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자 천적이었다. 맨몸으로도 충분히 위압적이었던 그는 체육 교사이자 학생주임 선생님(생활지도부장)으로서 언제나 1m 길이의 검은 곤봉을 휴대했다. 곤봉의 역할은 아주 다양했지만 공통점은 대부분 절도있게 무언가를 두드린다는 것이었다. 

 

  그는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두발 규정에 어긋나는 머리를 찾아냈다. 등교 시간 정문 단속 때 그의 모습은 악어가 뭍에서 물 마시는 새끼 임팔라를 낚아채는 듯 했다. 체육 시간 강당에서는 물수리가 수면 아래 잉어를 잡아채듯 교정이 필요한 학생들을 잡아냈다. 불가피한 경우 육탄전도 불사했다. 체육 교사로서의 면모를 빛내며 손흥민급 스프린트로 아이들을 잡으러 다닐 땐 드라마 <추노>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기역자로 꺾이는 복도의 코너에서 누군가가 부리나케 뛰어온다. 그러면 그가 친구든 선배든 간에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리는 우수수 흩어지며 줄행랑을 쳤다. 그러면 어김없이 이어지는 “일로 와!!”에 “으아악!!”이라는 답이 멀리서 들려왔다. 그렇게 우리는 급식실에서 밥을 먹던 와중,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던 와중, 졸업사진 촬영을 앞두고 머리를 길러 여기저기서 은신하던 와중에 도망을 다니느라 꽁무니가 성할 틈이 없었다.

 

  돌이켜보니 중학교 생활의 적지 않은 부분이 두발규정과의 끊임없는 술래잡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친구들과는 니가 두발 검사에서 걸리네 마네, 곧 견학가니까 사복 입을 텐데 구레나룻을 용케도 잘 길렀네, 나는 밀렸네 하는 대화가 일상이었다. 학원에 가면 이렇게까지 빡빡하게 굴 일이냐며 비교적 두발 규정이 느슨했던 타 학교 학생들에게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학교라는 교도소… 운운하며 부당하다고 많이 툴툴댔는데 내가 입학하기 이전의 학생주임 선생님인 ‘길동(가명)’ 쌤은 수동 바리깡을 가지고 다니며 손수 머리를 밀고 다녔다고 하니 그때보다는 학생 인권 수준이 진일보했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한때 구레나룻 1mm에 자존심 다 걸었던 그 교정에서 이제는 학생들이 머리 스타일로 더이상 곤욕을 치르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교권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게 된 이래로 선생님들이 학생지도부 업무를 기피한다고 한다. 학폭과 관련된 소송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제재에 앙심을 품은 학생과 학부모가 보복을 하니 계약직 교사에게까지 그 바톤이 넘어간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젠 선생님들이 도망치게 된 게 아닌가, 하며 갸우뚱해지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