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을 읽고.

지하철에서 읽으면 시선집중되는 색의 커버

얼마전 「1Q84」 로 하루키의 유니버스에 입장했다. 압도적으로 빨려들게 하면서도 소중히 읽고 싶었던 서사를 창작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내가 충분히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검색해보니 그는 소설 쓰는 것 외에도 번역이나 에세이 쓰는 일도 병행하는 이른바 ‘헤비라이터’였다. 내가 주로 쓰는 글은 에세이의 성격이 강하므로 하루키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에세이를 비롯한 ‘잡문’을 쓰는 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선택한 이번 책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 지금껏 그가 쓴 에세이들만 엮은 책도 몇몇 출간되었지만 이 책은 에세이 뿐만 아니라 정말로 ‘잡문’이라고 불려도 좋을 글들로 빼곡하게 실려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간단 소개

‘잡문집’에는 하루키의 길고 짧은 글 수 십편이 수록되어있다. 80년대부터 00년대까지 다양한 주제로 그가 신문/잡지에 투고한 글이나 다른 저자의 책에 쓴 추천사, 머리말, 인터뷰 원고, 인사말과 수상소감의 원고 등 그가 써낸 온갖 조각조각을 끌어모은 책이다. 뿐만 아니라 제법 긴 분량의 에세이도 몇 편 실려 있는데 재즈나 특정 인물 등을 주제로 하여 독자를 그가 펼친 생각의 풀장에 첨벙 빠트린다. 그밖에 일문과 영문을 번역하는 사람으로서의 고민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해설문도 읽을 수 있다.
 
각각의 글의 표지에서 현재(2010년대 초반)의 하루키가 달아놓은 코멘트를 확인할 수 있다. 어디에 투고한 글인지, 어쩌다 쓴 글인지 그의 기억이 허락하는 한 상세하고 친절하게 적어두었다. 참으로 담백한 글귀라 이조차도 흥미롭고 본문의 내용을 미리 맛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새로운 장이 시작될 때마다 그의 오랜 일러스트레이터 동료인 와다 마코토와 안자이 미즈마루의 삼삼하면서도 재기발랄한 그림 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

감상 포인트가 있다면?

 
어떤 글은 잘 읽히는 반면  따분한 글도 더러는 있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하루키가 생각하는 ‘글과 소설을 쓰는 이유’라든가 ‘소설가는 OO하는 사람이다’와 같은, 숙성된 결론들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궤를 같이하면서도 서로 다른 모습의 이런 문장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아마도 이것은 하루키의 30년 집필역사에서 체득한 지혜일 것이다. 걸음마를 시작한 나의 글쓰기에도 역시 반영해야 할 내용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러 글이 있었지만

‘음악에 관하여’라는 장에 포함된 글들이 개인적으로 모두 좋았다. ‘여백이 있는 음악은 싫증나지 않는다.’, ‘일본 사람이 재즈를 이해할 수 있을까.’와 같은 글들은 각각에 대해 감상을 남기고 싶을 정도로 흥미롭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주기도 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어떠한 문제를 이해당사자 모두에게 이롭게 해결하는 하루키의 지혜가 드러나있어 그에 대한 경의까지도 품게 해준 글이었다.

이외에도 완독 후 꼽아본 더 오래 기억하고 싶었던 글은 5편 정도다. ‘올바른 다림질 법’이라는 다림질에 관한 그의 짧은 생각을 적은 글이 군더더기 없이 참 인상적이었다. 글의 구성도 내가 지향하는 짧은 에세이의 표본으로 삼고 싶을만큼 좋았고, 다림질 도중엔 솔뮤직을 듣는다는 점, 꾸준히 옷을 다리면서 자신이 입고 다닐 옷과 대화를 한다는 말도 아주 멋있었다.

그렇지만 이 글이 고개를 끄덕이게한 가장 큰 이유가 있다. 그전에 살펴볼 것이, 일단 책을 펼치면 가장 처음 나오는 글인 ’자기란 무엇인가 - 혹은 맛있는 굴튀김 먹는 법‘(이 글은 하루키 유니버스 전체를 관통하는 그의 사상을 들여다볼 수 있어 메모장에 요약문을 적어두었다. )에서 하루키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1600자로 쓰라는 서류 문항의 문제에 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주제로 글을 써보자. 그러면 나와 그것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글을 통해 자동적으로 표현된다. 그러니 그것을 파고 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일을 쓰는 것과 같다.

- 본문 주요 내용 요약

‘올바른 다림질 법’은 바로 이 덤덤한 주장을 자연스럽게 뒷받침하는 글이었다. 그저 짧은 글을 읽었을 뿐인데 다림질이라는 행위를 대하는 그의 태도와 더불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들이 머리 위에 별처럼 하나둘 떠올랐기 때문이다. 본인이 얘기했던 것에 대해 한참 뒤 예시를 무심히 툭 던져준 듯하여 띄엄띄엄 두 글을 읽는 사이 흐른 약 7-8일 간의 공백이 마법같이 짧아졌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최근에 내가 썼던 글인 ‘반 년 수영 일기’가 사실 이 ‘자기란 무엇인가’를 보고 내 나름에 따라 써본 글이었다. 설명하고 싶은 것에 대해 1600자로 쓰는 일이 생각보다 녹록하지 않았고 (걱정과 달리 3000자를 훌쩍 넘겨버렸기 때문에 덜어내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단순 정보의 나열보다는 경험에서 솟아난 감상을 소개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아직 난 서툴렀다. 그렇지만 한 달 쯤 후 다시 읽어본다면 하루키의 경우처럼 나라는 인간에 대해 제 3의 눈으로 다시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품어본다. 과연 어떤 키워드들이 떠오를지.

이번에도 알차게 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