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읽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a Shallows)」, 2010. 니콜라스 카 저.

 

우리는 도구를 만들고, 그 후에는 도구들이 우리를 만든다.

  예전보다 두뇌의 활동이 점차 단조로워지고 있다는 생각, 다들 해본 적 있을까. 신선한 자극에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의 파고 또한 어쩐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내가 원인으로 탓하고 싶은 것은 10여 년 전 우리의 삶에 나타난 스마트폰. 이 첨단 기술이 선사하는 세계는 인간이라는 종(種)이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 너무나 체계적인 알고리즘으로 촘촘히 짜여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에 힘입어 태동한 소셜미디어는 어떤가. 휴대성은 물론 실시간으로 울리는 알림 메시지와 강력한 상호작용 기능 때문에 개인용 컴퓨터가 출현했을 때보다 우리는 훨씬 더 압도적으로 그것에 끌어당겨지고 있다. 스마트폰이 함께했던 지난 10년 동안 우리의 뇌는 분명히 그에 맞추어 바뀌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우려스러운 쪽이라는 심증을 품기로 했다.

  삼청동 과학책방 갈다의 서가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가 달라진 머릿속을 스스로 진단해보고 싶었던 바로 그즈음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책등에 인쇄된 추천사와 간추린 내용이 지난 몇 년간 흐릿하게 그려오던 의문과 가설들을 다룰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어쩌면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기술의 발전 속도를 늦춰야 하지 않을까? 묻지마 살인, 스토킹 범죄 등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뉴스에 더 자주 등장하는 것이 필연적인 결과라면? 모두가 손에서 놓지 못하는 그 도구가 우리를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같은. 서가에 꽂혀있던 것은 2020년 출간 10주년을 맞아 나온 개정 증보판이었는데, 책을 펼치면 저자인 니콜라스 카(Nicholas G. Carr)의 개정판 서문이 가장 처음에 등장한다. 거기서 그는 웹과 인터넷 통신망의 발달이 인류 전체의 지능을 상향 평준화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의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냉소한다.
 

‘우리는 더 똑똑해지지 않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있지도 않다.
(중략) 내 생각에 이 책은 10년 전보다 오늘날 더 의미가 있다.’

 
  과학 서적과 좀처럼 친해지기 어려운 나였지만 이 서문을 읽고 곧바로 구입할 용기를 얻었다. 그리곤 최근 며칠에 걸쳐 결국 다 읽었다. 언어 영역 비문학 지문을 읽는 것도 녹록지 않았던 내가 뇌과학 서적을 완독한 것은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처럼 뇌과학 초보자들이라도 파고들며 읽을 수 있는, 어렵지 않으면서도 전문적인 뇌과학 지식과 인간 사고에 변화를 일으킨 도구에 관한 흥미로운 역사를 고루 담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스마트폰의 지능이 높아지고 있는 것에 반비례하여 이 시대 인류의 인간성과 지능이 낮아지고 있다고 느껴온 나의 합리적 의심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주었다. 같은 결의 의문을 조금이라도 마음속에 품어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보면 좋겠다. 수십 년 전 이미 인터넷에 물음표를 던졌던 연구자들의 구체적인 연구 사례와 결과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이 장마다 남기는 메세지들을 천천히 또 깊이 차곡차곡 쌓아간다면 도구에 지배되지 않고 현명하게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큰 지혜를 선물 받을지도 모른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는 메세지를 크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신경 가소성 : 뇌의 구조는 변화한다.’
 
20세기까지 학계는 '뇌의 구조는 변할 수 없다'는 명제를 뒤집어질 수 없는 당연한 논리라고 여겼으나, 미국의 신경과학자 마이클 머제니치(Michael Merzenich)는 뇌의 구조는 감각, 사고, 학습, 인식, 기억 등 어느 것에 관여하든 변할 수밖에 없다는 '신경 가소성'을 발표하며 기존의 연구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는다. 머제니치 진영의 논리에 따르면 뇌는 과거의 자신의 상태를 고수하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스스로를 새롭게 정비한다. 이때 이 과정은 일생에 걸쳐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우리가 희생하는 정신적 기술들은 우리가 새로 얻는 기술과 비교해보면 더욱, 어쩌면 훨씬 더 가치 있을 수도 있다. 뉴런과 시냅스는 우리 사고의 질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뇌의 유연성이라는 특징 속에 지적 쇠퇴의 가능성이 이미 내재된 셈이다.

 
두 번째. '사용하는 도구에 따라 사고방식이 변한다.'
시계의 발명으로 사람들 사이에서는 시간에 대한 관념이 피어났고, 해 떨어지면 밭 갈기를 멈추는 식이 아닌 체계적인 노동이 이에 발맞추어 출현했다. 또한 종이, 유성잉크, 책, 인쇄술과 출판업으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발전 덕에 인간들은 구술로만 전해지던 선조들의 지혜를 더 이상 공들여 기억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모두가 읽고 쓸 줄 알게 되는 크나큰 축복을 받는다. 이로부터 문화와 사회가 새롭게 꽃피게 된 것이다.
 

세 번째. ‘인터넷은 인간을 피상적으로만 생각하게 하고, 기억과 집중력, 인간다움마저 빼앗는다.’
 

온라인에서 무엇을 읽을 때 우리는 깊은 독서를 가능케 하는 기능을 희생시킨다.

영어 원문의 제목이 「The Shallows(얕은 이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보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컴퓨터가 발명이 되고, 세계대전을 거친 후 마침내 등장한 인터넷은 언제 어디서나 쉽고 빠르게 원하는 지식에 도달할 수 있어 문명 등장 이후 최대 이기로 부상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그림자는 블랙홀처럼 우리의 지능과 인간성마저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쌍방으로 소통이 가능해진 지점에서부터 대중적인 인터넷 시대의 막이 올랐고,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사용자를 그가 찾고자 하는 내용으로 곧바로 이동시키는 하이퍼링크 기능과 동시에 여러 작업을 수행하는 멀티태스킹, 끝없는 알림 메세지, 소셜 기능이 뇌의 산만함을 증폭시킨 것이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주위에 있음을 인지하는 것조차도 뇌를 산만하게 하고 지속적으로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저자는 이를 두고 '뇌가 곡예를 한다'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개인적인 지식의 경작자에서 전자 데이터라는 숲의 채집가로 진화하고 있다.

 
 
배속재생과 카드뉴스, 챗GPT.

  한때 나의 직장 동료였던 A는 틈이 나면 유튜브를 곧잘 챙겨보았다. 킬링타임용 예능에서부터 생활의 지혜, 금융, 뉴스 등 대부분의 일상적인 정보와 소식을 유튜브로 접하는 듯했다. 그런데 A는 모든 컨텐츠를 최소 1.5배속으로 감상했다. 심지어 2배속으로 보는 경우도 많았다.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은 날이면 그 공간은 카세트 테이프를 빨리 감는 듯한 알아들을 수 없는 울림으로 가득 찼다. 정말 이 찍찍거리는 내용을 머릿속으로 온전히 받아들인다고?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글쎄. 여담이지만 A는 말하는 속도 하나는 참 빨랐다.

  한편, 그저 엄지를 휙휙 쓸어 넘기는 것만으로 원하는 내용을 읽을 수 있는 카드뉴스는 어떤가. 일련의 쓸어 넘김만으로 우린 한 사건 내지는 현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거나 공감할 수 있고 기억 속에 남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는 큰 착각이다. 소개된 연구에 따르면 쉽고 산만하게 얻어진 정보일수록 대부분은 뇌의 장기기억 보관소에 저장될 확률이 극히 낮아진다. 독서할 때의 글을 읽는 방식이 아니라 원하는 정보만을 신속히 찾으려 웹서핑을 하듯 글을 읽는 것은 그저 문서를 스캔하듯 피상적으로 읽게 될 뿐이다. 깊은 사고에 따른 깊은 이해는 동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생산되는 카드뉴스와 그 자극적인 제목에 이끌려 결국은 몇 번이고 다시 'XXX하지 않는 진짜 이유!', '요즘 조용했던 OOO 근황?'을 의심 없이 클릭한다.

  나 역시 언젠가 직접 배속재생을 하며 영상을 시청했더니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 왠지 효율적으로 느껴졌다. 카드 뉴스의 편리함에 그 생산자의 계정을 팔로우하게 되었다. 시대가 내뿜는 흐름을 개인이 거역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니콜라스 카 역시 심지어 본인조차도 스마트폰과 그 산물들의 충격적일 정도로 매혹적인 기능에 홀린 듯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책의 본문에서 고백한다. 그러나 사실 돌이켜보면 어제 봤던 유튜브 영상의 내용 중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없고, 카드 뉴스 또한 마찬가지다. 
 
  더 문제인 것은 이런 게시물들을 어차피 책갈피 혹은 스크랩 기능이 있으니 지금 까먹어도 나중에 다시 볼 수 있다고 우린 안심한다는 것. 핸드폰이 대신 기억을 해주기에 책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는 끊임없이 도구에 기억을 위임한다'. 잊어버려도 된다는 방심이 우리를 체계적으로 바보로 만든다. 자주 쓰는 뇌의 기능은 강화되며 그렇지 않으면 약화된다. 기억을 비롯해 깊은 독서나 사색, 추리와 같이 뇌의 유기적인 활동을 필요로 하는 두뇌의 작업은 영영 뇌 속에서 패권을 잃게 되고 세력이 빈약해질 것이다.

우리 인간성의 정수라고 여긴 '깊은 사고'는 돌진하는 진보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제대로 읽고 쓰기.

 

대중적인 독서의 시대는 우리 지적 역사에 있어 짧은 예외였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두뇌 작용에 가장 취약하고 민감한 계층이 유아•청소년이라는 언급이 있다. 어린 세대들의 문해력에 관한 논란이 이 문제에 닿아있다고 느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주는 재미가 내가 어렸을 때와는 격차가 너무나 커져버린 세상이라는 것을 구태여 주변의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확인해보지 않아도 나는 느낄 수 있다. 그 무대에서 책 읽기는 별 볼일 없는 단역으로 전락해 버렸을 것이 뻔하다.
 
  나와 내 세대, 그리고 기성세대가 끊임없이 좋았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그때를 잠시라도 경험해 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린 책 읽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느껴봤지만 요즘 10-20대에게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 그리고 그로부터 소소한 즐거움과 교훈을 느끼는 재미는 유튜브가 주는 재미에 비해 너무 시시할 것도 같다. 책이 주는 의미와 정신적인 혜택을 깨닫기 어려워진 세상이다.

  나도 정말 징그럽게 책을 안 읽다가 요즘에서야 이렇게 읽는데 그건 바로 유튜브와 스마트폰 중독이 책 읽기에 비해 무익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젠 책을 읽을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이젠 책을 읽을 때’가 다음 세대에게도 불쑥 찾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읽으라고 강요하지만 말고, 읽음으로써 마음과 정신이 달라지는 모습을 느리더라도 차근차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출발선에 놓기 좋은 책이다. 
 
  이제는 카드뉴스나 댓글 읽을 때처럼 '스캔하듯 읽는' 버릇을 버리고 깊은 사고를 동반한 깊은 독서를 하자. 이미 스캔하듯 읽는 방식에 지나치게 뇌가 훈련 되어있어서 무엇을 읽어도 깊은 독서가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나 역시 책의 본문을 읽고 다 이해했다고 생각해서 다음으로 넘어가기를 반복했는데 다음날 어제 읽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던 나날들을 자주 마주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독서를 보조할 수 있는 수단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적합한 방안은 요약과 메모였다. 기억할 수 있는 장의 단위를 설정하고, 다 읽을 때마다 그 내용을 요약해 나가고 책의 한 귀퉁이에 감정과 생각들을 메모하자. 그리고 책 전체를 다 읽은 뒤엔 그 내용을 복습하면서 지금처럼 독후감을 써보면 어떨까. 
 

요약과 다시 기억해보기, 주제를 찾는 두뇌 활동은 꼭 필요하다.

후기

 
  이젠 똑똑해질대로 똑똑해진 인공지능이 스마트폰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OpenAI가 쏘아올린 챗GPT를 시작으로 등장한 여러 초거대 AI를 보며 우리는 그저 재밌어하며 멍청하게 박수나 치거나 심각하게 걱정하는 척한다. 여기서 저자의 논리대로 한 번 더 회의를 품어보자. 인터넷의 바다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알맞은 정보를 낚아올리기 위해 우리는 적절한 검색어를 궁리해야 했지만, 챗GPT상에서는 그런 노력마저도 필요없다. 그저 머리 속 궁금증을 대화창에 입력하기만 하면 스크린에 대답이 출력된다. 대화 내역이 남으니 이를 애써서 기억할 필요조차 없다. 스마트폰 보다 훨씬 더 많은 영역의 두뇌 활동을 인공지능에게 '아웃소싱'하게 될 것이다. 혹시라도 활동에 여유가 생긴 두뇌를 다른 고차원적인 곳에 활용할 수 있을 거라는 낙관론자들은 미안하지만 꿈깨시라. 다음 10년이 지나면 우리의 뇌는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우려하는 것은 결코 과한 처사가 아니다. 편하고자 하는 욕망은 지금껏 그래왔듯 겉잡을 수 없는 부작용을 낳겠지만 이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기에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 영리하고 신중하게 인공지능을 마주해야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의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인공지능을 주체적으로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중적인 독서의 시대'를 반추하며 '짧게나마 예외적으로' 뇌를 활발히 사용했던 그때의 상태로 우리의 뇌를 되돌리려는 노력들이 과연 정말 의미 있는 것일까? 특히 시간의 x축에서 끝없이 오른쪽으로 떨어져 있는 지점에서는 그렇지 않을지 모른다. 먼 미래의 인류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다른’ 뇌의 구조를 가졌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지하철 내 옆자리에서 틱톡만 보고 있는 바보들이 천 년 후손들에게는 호모 사피엔스일지 모르고, 인간다움을 상실하는 것이 오히려 앞서 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공상이 나의 다짐을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양가적인 감상에 이르렀음에도, 적어도 우리 세대가 사는 세상은 아직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에 의해 꾸려지는 것처럼 보인다. 휘두르는 쪽에 설 지, 휘둘리는 쪽에 설 지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기회가 왔을 때 더 나은 판단을 하기 위해, 그리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장애물에 대한 가장 개인적인 저항의 수단으로 독서와 글쓰기를 멈추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