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듣고 싶은 앨범 : Mel Brown의 「Actor of Music」

  바이닐 구입을 위해 온/오프라인 샵에서 손품 발품을 팔 때, 위시리스트에 들어가는 앨범의 개수는 실제 구입으로 이어지는 수의 10배는 족히 넘는다. 사고 싶은 것에 비해 실제 구매는 턱없이 적은 것이다. 정해진 예산에 맞추어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토너먼트를 돌려야 한다. 이런 경우 우유부단한 나의 선택에 용기를 주는 가이드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한 가지는 '내 공간에 채우기 좋은 앨범이니'이다. 언젠간 개인 작업실을 마련하거나 직접 가게를 운영한다고 생각하고, 그곳에서 틀기 좋은 것, 틀고 싶은 것들을 고르는 것이다. 계절, 기상, 손님의 취향(손님이 듣고 싶은 것보다는 손님이 좋아할 만한 것)등을 고려하여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지만 역시 공간의 분위기에 맞는 앨범 이어야 한다.
 
  마음속으로 희망하는 나의 작업실의 모습은 해방촌의 「힐즈앤유로파」에 가깝다. 이 시대 감각의 끝을 달리는 와일드덕 팀원들의 헤아릴 수 없는 노고와 디테일이 집약되어 있는 공간.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함초롱한 비주얼의 푸딩이 유명한 그곳. 10명 중 적어도 8명은 만족시킬 수 있는 요리와 주류, 나머지 2명마저 만족시킬 음악까지 있는 그곳...

출처 : 에스콰이어코리아

출처 : 에스콰이어코리아

주말에는 낮시간에 카페로도 운영한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는 주중에도 테이블이나 바에 앉아 핸드 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언제 한 번 책을 읽으러 낮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저녁과 다르게 널찍하게 열린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가 색다른 매력을 풍겼다. 마침 그때는 coastlines의 1집 앨범이 무심하게 흐르고 있었는데 그 때 들었던 'Last summer in Rio'가 왜 이렇게 평소보다 특별하게 들리는지. 선곡에 힘입어 커피도 술술 들어가고 책도 잘 읽히고 바람도 선선하고... 낮시간이라 손님도 없었던 터라 그렇게 여유 있는 방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와서 보면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공감각적인 만족 때문인지 내 아지트도 이에 가까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앨범은 이런 멋진 공간에서 coastlines의 앨범처럼 무심하게 전곡 재생해 두기 좋은 소울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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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온라인 샵에서 중고 바이닐 업데이트 알림을 받고 목록을 훑어보던 중, 평소에 사고 싶었던 앨범 두 가지를 발견했는데 그 두 개로는 무료 배송비 조건을 만족하기엔 금액이 약간 모자랐다. 다른 앨범은 더 끌리는 게 없었지만 적당한 가격과 멋진 커버를 가진 것을 골라보다가 이 앨범을 발견하곤 큰 기대 없이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했다. 그렇게 곁다리로 배송받은 이것,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게 콜렉팅의 매력이지. 어떤 건 처음부터 끝까지 재생할 때 곡 전체의 분위기와 맞지 않아 듣는 이로 하여금 맥이 살짝 풀리게 하는 이질적인 트랙이 꼭 하나씩 있다. 이 앨범은 힘 빠지는 트랙 없이 1번부터 7번까지 30분 동안 스무스하게 고저의 무드를 넘나 든다.
 

Mel Brown 「Actor of Music」

커버 좋고 타이포그래피도 훌륭... Actor of Music은 바로 본인 이라는 듯한 느낌.

뒷면도 좋다. 대기실인 듯.

풍부한 관현악 세션과 소울풀한 보컬이 매력적인,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70's 소울/훵크. 

이 앨범은 Mel Brown이 발매한 단 하나의 앨범이기도 하고 동명의 재즈 기타리스트가 있기 때문에 앨범과 아티스트에 대한 많은 정보를 찾을 순 없었다. 프로듀서인 James Gadson을 직접 만나야만 그에 대한 실마리를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나마도 James Gadson은 프로듀서로서, 드러머로서 워낙 많은 탑스타들의 앨범에 참여했기 때문에 앨범 한 장이 커리어 전부인 Mel Brown에 대해선 아마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다만 인터넷 세상 어디를 찾아봐도 이 앨범은 Promotion반이 아닌 판매용 앨범을 찾을 수가 없는데, 아마도 라디오/방송 홍보용으로만 제작된 이후, 당시 대체 가능한 뮤지션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는지 다음 스텝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도약에 실패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그가 혹시 살아있다면 전해주고 싶다. 여기 아직 듣는 사람 있어요 선생님...!
https://youtu.be/jKHqHh3wDnM

Full album. 1978년 작.

A면에 바늘을 살포시 올려놓으면, 공간을 긍정적이고 즐거운 바이브로 충실히 채워줄 'I A MAN AND YOU A WOMAN'이 시작되며 뒤이어 말랑말랑한 스윗 소울 'Actor of Music'이 재생된다. 이거 참 어찌나 스윗한지 좋은 의미로 미간이 절로 구겨지는가 하면 어느새 입술을 안으로 말아 앞니로 깨물고 자동으로 고개를 좌우로 가로젓고 싶어지는 킬링 트랙이다. 사실 이 한 곡만으로도 이 앨범은 충분히 들을만한 가치가 생겨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방심한 사이에 우리를 사정없이 그루비한 건반 리프 속에 던져버리는 'Reality'가 이어지고, 네 번째 트랙 'Just living'에서는 화사한 이 계절에 끼얹으면 좋은 리듬으로 곡이 시작된다. 풍성한 관현악 세션이 온갖 색깔과 생명으로 피어난 봄날의 공원을 연상케 한다.
 
B면에서는 따사로운 바통을 이어받아 'Restless Moments',  'Does Anybody Really Care', 'Martha's Place'로 연달아 사랑 가득한 무드를 펼치다가, 마지막엔 경쾌한 훵크튠 'Call On Me'로 끝내기 홈런을 친다. 이런 감칠맛 나는 고저 조절이 우리를 무한 반복의 늪에 빠트릴 지도...
 
가만 앨범 전체를 듣다 보면 Mel Brown의 소울풀한 보컬의 표현이 참 멋스럽게 느껴진다. 요요요요요요요...라면서 장난하듯 애드립을 구사하고 어떤 곡에선 숨을 느끼하고 끈적하게 하악하악 내뱉는다든가, 갓 뽑아낸 가래떡처럼 쫀득쫀득하게 노래한다든가... 첫 앨범에 이렇게 화려하고 다양한 세션을 태우기도 하고 꾸준히 활동했으면 중박이라도 터뜨렸을 법한 보컬인데 어쩌다가 제대로 데뷔도 못한 것인지 알면 알수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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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작업을 할 필요 없는 내가 굳이 작업실을 차리게 되는 날이 올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역사가 돌고 돌듯 바이닐의 유행도 서서히 저물어갈지도 모르겠지만, 여유가 생겨 나만의 아지트가 생긴다면 편안한 소파와 널찍한 바 테이블, 과하지 않은 아날로그 사운드 시스템을 두고 커피와 술과 음악과 햇살과 야경을 걱정 없이 즐기고 싶다. 그때 내 소중한 아지트에 찾아온다면 Mel Brown의 'Actor of Music'을 들으며 린넨으로 잔의 물기를 닦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