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지 「에코」와 '에스피오네'

삼각지 멜로디 바 에코의 인스타그램에서 다시 핀 개나리처럼 반가운 이름이 등장했다.

포스터에 명불허전 이재민 선생님 @round.midnight

 

ESPIONNE 

 
포스터의 컬러톤과 내용을 통해 이 파티는 다가오는 봄에 걸맞은 다채로운 브라질 음악으로 가득 찰 것임을 기대할 수 있었다. 특히 에스피오네(Espionne)는 DJ 소울스케이프의 또 다른 활동명으로 주로 브라질 음악을 플레이하거나 라이브러리 음악 관련 활동을 할 때에 가끔씩 부캐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코로나가 창궐했을 때쯤 belif 음악 시리즈 열한번째를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행보를 볼 수 없었던 것 같은데 오래간만에 이름을 만나보게 되어 정말 반가웠다. 
 
삼각지의 에코 또한 오픈 이래로 늘 궁금했기 때문에 지난 토요일에 열린 이 파티에 다녀왔다. 삼각지역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 서울에 산다면 어렵지 않게 방문할 수 있다. 참고로 사람이 많이 몰리는 맛집 거리와는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어 상당히 쾌적하다. 에코는 대로변의 아담한 2층짜리 단독 건물의 2층에 위치해 있고, 1층의  '애시드' 매장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나오는 문을 통해서 입장할 수 있다. 매장엔 로컬 DJ도 있고 음반 컬렉션, 믹싱도 매우 훌륭하기 때문에 굳이 파티가 열리는 토요일이 아니어도 무드와 시기에 맞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에코는 익히 보고 들어온 것처럼 10평이 될까 싶을 정도로 협소한 공간이었지만, 좌석 없이 스탠딩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지만 않으면 불편하지 않게 이용할 수 있었다. 의외로 매장 내부가 손님으로 즐비한 정도는 아니어서 무난하게 드링크를 주문하고 이동할 수 있었다. 친절하게도 입고 있던 두꺼운 외투를 직원께서 직접 받아주셨다. 적당한 자리에 서서 서빙해 주시는 칵테일을 받아 들었다.
 
특이한 점으로 드링크를 트래쉬버스터즈의 주황색의 불투명한 다회용 컵에 따라주는데 사실 본래 사용 목적인 환경이나 일회용 컵의 사용제한보다는 좁은 스탠딩 공간 내에서 유리잔 파손으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일 것 같다. 두 시간 정도 서서 즐기는 파티에서 내내 쥐고 있을 내 컵은 기왕이면 좀 더 예뻤으면 좋겠지만 좋은 의도라면야 기꺼이 사용한다. 다만 위스키샷과 약간의 얼음만 담을 수 있게 컵크기가 좀 더 작았으면!

아무튼 한 모금 칵테일을 들이키니 그제야 음악이 귀로 들어왔다. 다음 바이닐을 고르고 있는 DJ 소울스케이프 님도 보였다. 좁은 공간이라 당연했지만 디제이와 너무너무 가까워서 기분이 이상했다. 서로의 잔을 부딪치며 건배할 수 있는 거리였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모든 클럽이 문을 닫았을 때 노련한 디제이들이 향한 곳은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이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서, 수익에 대한 기대는 어려웠겠지만 여전히 그들은 사람들한테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었다. 난 당시 소울스케이프 님의 헤드룸락커스(룸360) 방송을 통해 그와 그의 360 친구들이 소개하는 멋진 믹스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참 감사한 경험이었다. 이런 소중한 음악들을 방구석에서 소개받고 들을 수 있다니. 그때 함께 비웠던 맥주와 위스키가 얼마나 될까. 그땐 날마다 플레이하는 장르가 달랐는데 나는 소울스케이프 님이 espionne의 이름으로 브라질 음악을 플레이하는 날을 가장 좋아했었다. 덕분에 mpb와 보사노바를 더 좋아하게 되었기도 하고.

2020년 방구석에서 룸360 견학하기.

에코에서 플레잉하는 espionne a.k.a dj soulscape

돌아가는 삼각지 에코에서 돌아가는 7인치

그런 의미에서 실제로 이렇게 눈앞에서 2시간 동안 그의 브라질음악 믹스를 들었던 건 내게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는 결론이다.  Marcos Valle, Quarteto em Cy, Gilberto Gil, Emilio Santiago, Ana Mazzoti 등 2년 전 라이브에서 알게 된 아티스트들의 노래와 처음 들어본 노래들이 조화롭게 뒤섞였다. 구하기 정말 어려운 오리지널 브라질 판들을 눈 앞에서 그렇게 많이 보는 것도 황홀하고 새로웠다. 
 
어떤 손님들은 생각보다 너무 대놓고 샤잠을 돌렸는데 다소 생경했다. 클럽을 많이 다니는 것도 아니어서 그게 예사이거나 디제이들이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모를 수도 있지. 물론 금지된 행위도 아니고 내가 튼 노래를 누군가가 그렇게 좋아해주면 나도 기분이 좋을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이런 노래들은 나중에 내 플레이리스트에 섞이는 것보다는 에코와 같은 공간에 직접 가서 근사한 믹스 내에서 만날 때 제일 감동이 오롯이 전해진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는 게 좋으니까 !
 
위는 그냥 사사로운 사견일 뿐이고 에코를 다녀와서는 전반적으로 매우 만족했다. 파티의 내용과 접객, 드링크, 사운드 시스템, 분위기 모두 5점. 화장실은 안 갔다와서 모르겠다. 매주 가고 싶다. 매주 이런 양질의 파티가 열리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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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espionne의 belif 시리즈는 코로나 때문인지, 계약이 종료되었는지 모르겠지만 2020년 11번째 시리즈를 끝으로 더이상 새로운 시리즈를 만나볼 수 없어 아쉬웠다. 그의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에서는 vol.5부터만 게시되어 있지만, 비교적 최근에 Yehun Kim님 덕에 모든 버전을 들어볼 수 있게 되었다. 국내의 걸출한 뮤지션으로 이루어진 세션으로부터 탄생하여 누구도 좋아하지 않기 힘든, 따스한 색을 가진 음악들이므로 꼭 들어보길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