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에게

호두에게

  호두는 새하얗고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 터키쉬 앙고라라는 종명이 있지만 단지 그것만으론 호두를 설명하긴 조금 아쉽네. 다정이네 네 발 달린 세 식구중에서 그래도 호두만큼은 나를 제법 좋아했다.

  늦은 봄, 호두의 몸 상태가 안 좋아져 그 때부터 마음 속에 작별을 위한 작은 방을 한 칸 마련해야했다. 아무리 그래도 지난 10월 14일은 영 갑작스러웠네. 일 많은 토요일 한참 어수선하던 와중 서툴게 호두를 저편으로 보냈다.

  호두는 나보다 먼저 떠나보낸 여러 소중한 존재들 중에서 가장 내 곁에 가까이 있었고 친밀도도 높았다. 그래서인지 며칠동안 맥락없이 떠올랐던 녀석의 햇볕같은 온기와 발바닥과 털의 감촉, 평화로운 그르렁거림들~ 뒤늦게 실감하는 호두의 무거운 빈자리 뒤, 함께 밀려왔던 감정을 이만 추스르고 우주 최강 전무후무 고양이 호두를 다시금 추억하며 이 글을 쓸 수 있어 무지 기쁘다.

  처음 만난 호두는 분명히 다 큰 고양이인데도 목소리가 작고 짧았다. 목메인 소리 같도 하고. 꼭 음악 시간에 배운 스타카토처럼 울음 소리를 냈다.  양! 양! 시원하게 야옹~ 하지 않아서 어디가 아픈 줄 알았다. 그건 호두만 낼 수 있는 독보적인 울음이었다. 눈앞에서 양- 양- 하고 있으면 울음 소리 한 번에 애간장이 닳고 심장이 아렸다. 그렇게 넋놓고 시선을 빼앗겼다가 눈가에 눈꼽이 있으면 눈꼽을 떼주고 턱에 털이 엉켜있으면 빗기거나 잘라주었다. 귀찮아하면서도 결국은 몸을 맡겼던 호두.

  호두는 내가 장난을 걸어도 그저 가볍게 깨물뿐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호두 앞에서 나는 할아버지 수염을 잡아당기고 노는 어린 손자였다. 성가심이 계속되면 호두는 점잖게 자리를 잠시 피했다가도 얼마 안가 내 무릎 위로 다시 올라왔다.

  호두는 참 잘 먹었다. 간식을 째즈와 나눠주면, 입맛이 까다로운 째즈가 남긴 몫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한참 와구와구하면서 먹다가 접시에 박았던 고개를 들면 턱에 난 하얀 털이 간식 색으로 물들어있었다. 그럴 때마다 물티슈로 박박 닦여도 겸허히 힘찬 세척을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마음이 바뀐 째즈가 간혹 다시 먹으러 돌아올 참이면, 슬그머니 먼저 먹으라고 양보를 하는 의젓한 고양이.

  털을 깎여도, 목욕을 시켜도 발톱을 안 세우는 고양이.

  코가 짧아 잘 때 새근새근 코를 고는 고양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자기 냄새를 묻혀주는 정 많은 고양이.

  억지로 먹이는 약도 참고 잘 먹는 고양이.

  겨울옷을 꺼내니 여전히 호두의 털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차마 돌돌이를 밀기 어려웠다. 아쉽다. 보고 싶은 호두.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텐데.

  호두야~ 먼저 가 있는 그곳은 어떠니? 심심하진 않아? 다음 생엔 우리 모두 같은 종으로 태어나자. 우리 다섯이서 한 번에 같은 종으로 만나긴 너무 어렵겠지만 안되면 그 다음 번이어도 좋으니까 기다려볼게. 뭐로 태어나든 너가 날 보고 달려와 솜뭉치같은 머리를 내 발목에 있는 힘껏 비벼준 것처럼 우리 서로를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추자.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