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년 수영 일기

마르코스 발레 1977년 앨범

https://youtu.be/qaPBURMPcdQ

오늘의 글에 맞는 커버의 앨범을 선택해보았습니다

지난 12월부터 매주 2회 수영 강습을 다니고 있다. 한 타임에 50분이므로 일주일에 그렇게 운동량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짧은 남짓 수영을 하면 평소 사용하지 않아 움츠러든 온몸의 근육들을 모조리 해방시킬 수 있다. 잘못된 자세 때문에 삐딱하게 굳어져 가는 근육에게는 수적천석의 힘을 가해 미세하게라도 긍정적인 균열을 일으킨다. 덕분에 수영을 배운 날 이후로는 접영에서 웨이브를 할 때처럼 가슴을 활짝 펼친 채 내밀며 다니려고 의식적으로 머릿속에 알람을 울린다. 흡! 하며 가슴을 쫙 피면 각자의 자리에서 탈출하려 하는 거북목과 아랫배는 비로소 제 위치를 찾아 들어간다. 매주 투자하는 100분이라는 시간으로 제멋대로 흩어져버린 근육의 한 주치 무질서가 다시 하나의 유기체로 똘똘 뭉치는 느낌이다.

정자세 필승

다른 운동들도 그러하듯 수영 역시 자세가 중요하다. 물론 올바른 자세가 아니더라도 경험이 만든 제각기의 영법이 있다면 물속에서 앞으로는 나아간다. 하지만 적어도 내륙에서 나고 자란 나 같은 인류라면 창피를 무릅쓰고 청계천에 뛰어들지 않는 한 물 웅덩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자맥질조차 평소에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신입사원이 선배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업무를 그대로 따라하며 배우듯이 우리 내륙 인간들은 유구한 수영 역사 속에서 검증된 4대 영법을 강습받아야 한다.

그런데 어느 영법이든 같은 힘을 들여도 자세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전진하는 거리에 제법 큰 차이가 생긴다. 강사님이 이제 어떤 레파토리로 영법별 주의사항을 알려주는지 파악을 했음에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리는 올바른 자세를 취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기본적으로 가라앉는 것에 대한 저항을 끊임없이 만들어야하고 호흡도 계속해서 신경써야한다. 이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손가락, 손바닥에 얼마나 어떻게 힘을 줘야하는지, 고개는 어느 타이밍에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들어야하는지, 짧은 시간안에 온몸을 다 점검해야한다. 물론 내가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반 년짜리 초심자이기 때문이다. 꾸준한 반복 숙달이 거듭되면 올바른 자세는 습관이 되어 지상을 걷는 것만큼 헤엄이 자유로워질 것이다.

현 시점에서 나는 평영을 가장 좋아한다. 다행히 강사님은 다른 것 다 못해도 생존엔 평영이 제일이기 때문에 평영만큼은 다들 꼭 해냈으면 좋겠다고 나름의 가르침을 전파하신다. 평영도 쉬지 않고 레인을 돌고 나면 당연히 숨이 차지만 다른 세 영법과는 아주 다른 매력이 있다. 발차기 방식도 특이하고 손도 헤엄치는 내내 물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속도가 빠르지 않은 데다가 스트로크와 스트로크 사이에 약간의 텀을 두어야해서 느긋하게 유영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요컨대 덜 힘들어서 좋아한다는 뜻이다.

제일 어려운 것은 접영. 접영은 오리발이 없으면 아직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하면 할수록 어째서인지 정자세에서 멀어진다. 몸이 워낙 뻣뻣해서 웨이브 자체도 어렵고 두 발도 돌고래의 꼬리지느러미처럼 붙어 있어야해서 하체를 신경쓰다보면 상체가 무너지고, 그 반대로 되기도 한다. 아주 천천히 혼자서 연습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아쉽게도 같은 레인엔 강습생이 아주 많다.

자유형이 가장 기본이라고 하지만 역시 아직 난 갈 길이 멀다. 번갈아 휘젓는 팔의 방향으로 몸통을 돌려주는 ‘롤링’이 제대로 되지 않고 특히 왼팔을 돌리는 동안 자세가 많이 무너지고 있다. 하체 힘이 금방 달리고 심장도 격렬하게 요동쳐 25m레인을 두 바퀴만 돌아도 거의 K.O 상태다.

마지막 배영이야말로 영력이 쌓일수록 어려워지는 영법이라 했다. 하지만 아직 난 배영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수준이다. 편안히 누워 한 척의 조각배가 된 듯 턱을 당기고 팔로 노를 젓다보면 자연스레 레일의 끝에 정박한다. 과연 언제쯤 배영을 하며 답답해질지.

수영만의 묘미

수영이 다른 생활 체육과 구별되는 점은 사진이나 영상 촬영이 다소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설명은 필요없을 터. 물론 수영장 내에서의 개인 촬영이 금지된 것도 아니고 만일을 대비해 CCTV도 항상 작동 중이다. 하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은 굳이 핸드폰을 들고 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수영장엔 자신의 모습에 과하게 심취해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딴 짓 없이 오로지 지금 해야되는 일에 모두가 집중하는 분위기가 유지된다. 이런 스마트폰 청정지역의 뜨거운 단합 속에 들어와있는 것은 각자에게 알게 모르게 좋은 자극이 될 것이며 흔치 않은 경험이기도 하다. 운동 중 누군가의 카메라 렌즈를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 편한 일이라는 것도 새삼 깨닫는다.

가끔 너무 가기 싫어도

인생 첫 수영 강습을 받았던 나이는 7살. 당시 집 근처 구립체육관의 유아체능단에 몸담아 일주일에 세 번은 수영장에 갔다. 우리 반을 가르쳤던 몸집이 산만했던 남자 강사가 어린 시절 나는 너무 무서웠다. 강사 입장에서는 말 안듣는 아이들을 사고없이 돌려보내려면 매 순간을 날이 선 채로 임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호흡이 달려 자유형을 하던 중간에 라인(레인 로프)을 잡았다고 그 사람은 나를 서슬퍼런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안그래도 인상이 강했는데 쫀쫀한 수영모자를 쓰니 양 눈가가 귀신처럼 더 추켜올려져서 곱절로 무시무시해보였다. 그 이후로 체능단에서 수영을 관둔 건 아니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계속 출석했음에도 선뜻 물과 더 친해질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 수영 강습은 감사하게도 유년의 나쁜 기억을 거의 투명에 가깝게 희석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강사님들도 친절하고 즐겁게 재밌게 수영하자는 모토로 강습을 진행하시는 덕분이다. 물 속에서의 호흡에 점차 익숙해지는 것도 다시금 수영장에 가도록 하는 성취감 차오르는 동기가 된다.

수영장에 오래 다닐수록 몸의 근육량이 더 많거나 코어라도 탄탄하면 수영 실력이 훨씬 더 빠르게 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석하게도 당장 나는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몸이기 때문에 올바른 자세를 지향하며 꾸준히라도 해보고 있다. 점차 더 나은 수영 생활을 위해 대근육과 코어 위주로 다른 운동을 병행해보아야 겠다. 새벽 6시 반에 알람이 울리면 너무나 괴롭고 아직도 코로 입으로 많이 마시는 물이 영 개운치 않지만 이른 아침에 샤워까지 끝내고 체육관 문을 열고 나오는 그 상쾌함이 훨씬 압도적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