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노트 읽기 01. Quincy Jones -「Big Band Bossa Nova」

20세기 앨범 수집의 또 다른 즐거움은 커버 뒷면의 라이너노트를 읽는 데에 있다. 라이너노트는 평론가, 레이블의 관계자, 혹은 동료 뮤지션의 해당 앨범에 대한 소개, 곡별 코멘트, 해설 및 평론을 담은 글이다. 특히 재즈 앨범이라면 십중팔구 라이너 노트가 실려있으므로 수록된 곡을 감상을 하며 한 번쯤은 꼭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시대가 바라보는 해당 앨범에 대한 견해, 구글링으로는 찾아볼 수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아티스트 개인적인 이야기도 읽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작고한 별들의 이야기라 하여도 그들과의 친밀도를 향상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는 라이너 노트를 눈으로만 읽어보고 따로 곱씹어 본 적은 없었는데 현대음악사에서 어떻게든 이름을 남긴 사람이 쓴 글이라면 충분히 정독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 블로그를 기회 삼아 직접 번역을 해보려 한다.

우선 오늘 첫 번째로 소개할 앨범 「Big Band Bossa Nova」의 첫번째 곡 SOUL BOSSA NOVA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5초만 같이 들어보자.

https://youtu.be/WUFQ9nzi0V0

어디에서 들어봤을까 ?

왠지 00년대 중반 <출발 비디오 여행>이었나 <접속 무비월드>였나 하여튼 어느 영화 소개 프로그램 속 한 코너의 오프닝으로 쓰였던 것만 같은 곡이다. 언젠가 아주 오랜만에, 코끼리도 춤추게 할 것 같은 이 멜로디를 우연히 들었을 때 느꼈던 익숙함이 이처럼 제법 오래전 기억에서부터 기인한 듯하다. 그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던 일요일 정오만큼 나른한 익숙함이었다. 그러면서 그 옛날엔 아무렇지도 않게 들렸던 음악이, 브라질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로는 퀸시존스의 곡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괜히 세션 하나하나가 새롭게 들렸고 또 더 자세히 듣고 싶어졌다. 홍대 레코드샵 메타복스의 재즈 코너에서 이 앨범을 발견했을 때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구매했다.

잘 알려진 보사노바 앨범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앨범에도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빙이나 루이즈 봉파 같은 보사노바 거장의 클래식들을 퀸시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곡들이 여럿 수록되어 있다. 다만 특별하게도 다소 단조롭고 절제되어 있는 듯한 인상의 원곡들과는 달리, 이 앨범에서는 빅밴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풍성하고 경쾌하게 편곡되었다. 단순히 기타와 색소폰, 피아노 정도로만 구성된 어떤 곡을 여러 명의 연주자와 악기들로 새롭게 편곡해 보라고 해도, 어설프게라도 완성하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퀸시 존스는 그의 역량과 책임을 다하여 이 훌륭한 열 곡을 완성해냈고 그것도 지금까지도 미디어를 통해 심심치 않게 들어볼 수 있을 만큼 세련되게 해낸 것이다.

62년 작품.

이 앨범은 1962년, 그러니까 2023년 기준 내가 현재 30대 초반인데 무려 우리 아버지가 요람에서 가까스로 고개를 꼿꼿이 세웠을 무렵에 세상에 나왔다. 60여 년 전은 얼마나 옛날일까? 그 당시 음악이 어떠했는가를 떠올려보면 대략이라도 가늠할 수 있다. 어렵게 많은 걸 생각할 필요 없이 전자음악, 힙합과 알앤비가 세상에 나오기 한참 전이고, 비틀즈가 아직 미국에 Invasion하지 않을 시기이기도 하고 Chubby Checker가 '컴 온 레쓰 트위슽 어게인~'하면서 구둣발에 불나도록 트위스트를 추었을 때라고 보면 된다. 이 앨범의 라이너노트는 위와 같은 대중음악을 뒤흔들 경험이 아직 없지만 누구보다도 당시 음악의 흐름과 뮤지션과의 관계를 잘 알고 있던 사람이 작성하였다. Gene Lees라는 평론가인데 캐나다 출신의 기자라는 것을 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살아생전 수많은 서적을 편찬하였고, 우리도 잘 아는 여러 재즈 음반에 라이너 노트를 백 편 가까이 기고하였다고 한다. 이토록 다작하는 평론가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아티스트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말 놀랍게도 내 블로그의 타이틀인 'Corcovado'라는 곡의 영어버전 가사를 쓴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https://youtu.be/VEMWhrfFVDc

이 곡은 아래 라이너 노트에서 소개할 주앙 지우베르투, A.C 조빙과 스탠 게츠가 함께한 보사노바의 교과서와도 같은 앨범「GETZ/GILBERTO」에 수록되어 있다.

Lees는 아마 아티스트들을 직접 만나 작업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앨범 작업에서 또 만나고, 다른 아티스트의 작업에서 이 사람들을 또 만나고 하는 식으로 서로의 친분을 공고히 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여러 연결고리를 만들다보면, 작사에 참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심지어 나중에 어떤 앨범에서는 직접 목소리까지 보태었다고 전해진다. 만약 Lees가 음악의 매니아였다면 이런 성덕이 또 있을까 싶어지는 대목이다.

아무튼 나도 진지하게 평론을 읽어볼 겸, 녹슨 영어 독해도 해볼 겸 매끄럽진 않지만 라이너노트의 번역(많은 의역을 곁들인)을 해보았고 이번 앨범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청자에게 보사노바라는 장르, 그리고 보사노바와 재즈의 관계에 대해서 친절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앨범 발매가 1962년이라는 것, 그리고 Gene Lees 개인의 평론임을 감안하고 읽어보자!

이 앨범은 재발매 반인데, 아무도 안 읽을 것을 확신했는지 글씨를 너무 작게 편집하여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실제로 최근 재발매되는 대부분의 라이너 노트가 이렇다.

---

퀸시 존스

빅 밴드 보사노바

가장 새로운 라틴 아메리카 리듬

보사노바를 빅 재즈 밴드 스타일로 녹여내는 것은 확실히 누구보다도 퀸시 존스가 맡아야 했다.

나(글쓴이)는 퀸시를 1958년 파리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는 거기서 Nadia Boulanger와 함께 작곡을 공부하고 작업하고 있었다. 다른 재즈 음악가들과 다르게 퀸시는 프랑스의 샹송 같은 여러 다른 나라의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보였다. 중동과 라틴 아메리카 같은 곳까지 여행하며 견문을 넓힌 경이로운 삶을 살아온 덕일 것이라 생각한다. (역주: 지금은 아주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1958년도임을 감안하면 경이롭다고 말할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보사노바는 퀸시에게 그렇게 녹록한 대상은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리듬을 오케스트라 음악과 어울리도록 편곡하는 것이 제일 문제예요."

"보사노바라는 장르는 가볍게 떠다니는 느낌의 리듬을 가졌으니 너무 무겁게 들리면 안 될 테고, 리듬과 화성에서 나오는 그 강한 매력이 보사노바를 풍부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보사노바가 재즈에 미치는 영향은 일시적이지 않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입니다. 보사노바는 재즈가 그동안 갇혀있던 2/4, 4/4박자라는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재즈 음악가들도 물론 지난 몇 년 동안 장르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었지만, 보사노바는 그야말로 신선한 방향을 새롭게 제시해주었습니다."

몇 년 전 나는 주앙 지우베르투라는 브라질 가수의 LP 한 장을 우연히 갖게 되었다. 지우베르투는 내가 들어본 보컬들 중 가장 뛰어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재즈 트럼페터처럼 아주 긴 마디를 노래했고, 그것도 아주 독특한 표현법으로, 미묘한 리듬으로 그 마디를 노래하는데 난 여전히 이걸 듣고도 믿을 수가 없다.

언젠가 리우 데 자네이루에 갔을 때, 나는 작곡가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빙의 집에서 지우베르투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당시 조빙은 지우베르투와 함께 작업하고 있었고 이미 보사노바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여러 곡을 만들고 있었다.

확실히 보사노바는 재즈에 많은 부분 의존한다. 그렇지만 조빔과 지우베르투 같은 브라질 음악가들은 보사노바를 그들 자신만의 것으로 잘 변형해오고 있다. 만약 더 젊은 세대의 브라질 음악가들이 재즈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브라질만의 음악에도 같은 흥미를 가지게 될 것이고 보사노바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곧 보사노바를 낳은 삼바로, 삼바를 낳은 "카니발 뮤직"으로 이어질 것이다.

보사노바는 "뉴-웨이브", "새로운 것", "새로운 목소리"라는 뜻으로, 전통적인 삼바음악에 대한 혁명을 대표하고 있다. 리듬 측면에서 보사노바는 삼바보다 더욱 미묘하고 물 흐르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지만, 스윙적인 요소는 더 적다. 보사노바는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절제된다고도 표현할 수 있다. 비록 재즈가 그러하듯 리듬이 비교적 정적이긴 해도 보사노바는 앞으로 꾸준히 전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음악가들의 말을 빌리자면 보사노바는 반주 중 제일 위쪽에서 연주되는 것이다.( "It is played very much on top of the beat.")

재즈는 한 마디에서 두 번째와 네 번째 박자에 리듬을 가장 강조하지만 보사노바를 포함해 삼바 음악은 첫 번째 박자에서 주로 그렇게 한다. 재즈와 보사노바의 가장 확실한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작은 차이점을 하나 더 꼽자면, 보사노바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은 다른 사람들보다 아주 살짝 앞질러 전혀 다른 박자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들린다. 마치 녹음하는 내내 스튜디오에 목수 한 명이 뜬금없이 하루종일 못을 망치로 박아대는 것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박자가 아주 그럴싸하게 들리게 된다. 보사노바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자아내는 역할을 하며 신기한 변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떤 재즈 연주자는 그랬다. "재즈를 들으면 박자에 맞춰 발을 구르고 싶어 지는데 보사노바는 듣고 있으면 온몸을 움직이게 됩니다."

아마 이런 것들이 재즈를 연주하거나 즐기는 사람들이 보사노바에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 같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 두 장르 모두 방식은 달라도 특별한 swing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swing이라는 것은 여기서는 재즈의 한 장르라기보다는 리듬을 해석하는 특별한 방법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화성의 측면에서 보사노바는 재즈와 비슷하다. 코드 진행도 찰리 파커 시대부터 재즈에서 들을 수 있는 그것과 유사하다. 그렇지만 이 앨범 내의 여러 곡을 작곡한 조빔만큼 음악 교육을 잘 받은 뮤지션이 다른 재즈 음악가들처럼 20세기 유럽의 클래식 음악에 전반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둘이 비슷해진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 앨범에 사용된 곡들은 보사노바의 지평을 넓혔다고 할 수 있다. ONE NOTE SAMBA, DESAFINADO, 그리고 CHEGA DE SAUDADE같은 곡들은 앞서 언급했던 조빔이 브라질에서 지우베르투와 함께 작업한 곡이다. FORGIVE ME IF I'M LATE도 마찬가지. (각각 7번째, 3번째, 10번째, 5번째 곡)

LALO BOSSA NOVA라는 곡은 아르헨티나의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미국 재즈씬의 유명인사 Lalo Schifrin의 블루스 곡이다. 참고로 Lalo는 이 앨범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다.

ON THE STREET WHERE YOU LIVE, SERENATA라는 곡에서는 보사노바가 아메리칸 스탠다드 팝 음악의 레파토리에 어떻게 잘 녹아들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SOUL BOSSA NOVA(이 앨범의 킬링 트랙이라 할 수 있는)와 BOOGIE BOSSA NOVA를 들으면 재즈와 보사노바가 한 트랙 안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양립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여담으로, ON THE STREET WHERE YOU LIVE에서 들리는 리듬은 보사노바에서 보다는 carnival music에서 더 영향을 받은 곡이다. Canival은 브라질에서 탄생한 음악 장르로 축제가 주로 열리는 2월에 그 나라 전체, 동네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 온 마을이 축제의 기쁨으로 하루종일 들뜨게 되고 주민들은 각자 집에서 뚱땅거릴 수 있는 도구라면 프라이팬이든 뭐든 다 가지고 거리로 뛰쳐나와 두들겨대며 carnival music을 연주한다.

퀸시는 이번 앨범에서 라틴아메리칸 퍼커셔니스트를 세 명 더 충원하여 리듬섹션을 보강했다. 이들은 Jose Paula, Cancho Gomez, Jack del Rio라고 한다. 베이스 주자엔 Christ White, 재즈 퍼커션엔 Rudy Collins가 함께 했으며 우리나라(미국)의 보사노바 선구자인 Jim Hall이 두 곡(9번째, 10번째 곡)에서 기타 연주로 활약했다.

이 모든 것의 합이 바로 이 앨범 「Big Band Bossa Nova」이다.

Gene Lees 씀.

---

중간에 독해 능력 부족 탓인지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보사노바에 관한 참고할 만한 정보들을 많이 제공하고 있다. 앨범에 대한 당시 평가도 한 번 가져와봤다.

영국 음악 매체 Record Mirror지(紙)의 이 앨범에 대한 평가 내용. 평점은 5점 만점을 주고 있다.

내로라하는 연주자들과 함께 작업했음에도 이를 리스트업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 앨범의 유일한 흠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라이너 노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누가 어떤 악기를 연주했는지 알 수가 없다. 크레딧에는 단지 어떤 악기가 쓰였는 지만 적혀있고 Produced by Quincy Jones가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의 전부.

앨범에 적힌 라이너 노트를 해석해 봄으로써 한층 깊은 수준의 감상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가치 있는 앨범과 그 라이너트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맺기 전 한 가지 보태보자면,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 이처럼 라이너 노트를 꾸준히 쓰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힙합 평론가 김봉현 님. 한국 힙합 문화에 관한 깊은 이해로 저널도 많이 쓰시고 책도 여러 권 출간한 작가이자 평론가다. 몇 해 전부터는 JJK의 앨범을 시작으로 '동교동계 바이닐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힙합 앨범을 바이닐 형태로 재발매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23년 2월 기준 벌써 스물두 번째 앨범이 발매되었다. 여기서 그는 직접 앨범의 라이너노트를 작성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봉현 님은 아티스트들과 접점이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주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이런 행보나 동교동계 바이닐 프로젝트를 추진해 나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Lees가 당시 음악가들의 앨범 작업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된다. 가만보면 책도 많이 내고... 두 사람이 참 닮은 점이 많아보인다.

그럼 이만 첫번째 라이너 노트 읽기를 마치겠다.

참고 1
참고 2
참고 3 : 퀸시존스에 대해 알고 싶다면 넷플릭스에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있으니 꼭 시청해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