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닐 처음 사러가던 날 : 샤라웃 투 「모자이크」

모자이크 인스타그램(@mosaicseoul)에서 가져왔음.

2020년 5월, 인스타그램을 통해 두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는 레코드 샵이 생겼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그 이름 mosaic. 캬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로고를 뽐내며 오픈을 알린 이곳은 신당동 뒷골목이라는 당시로서는 말도 안 되는 위치에 터를 잡았다. 세탁소나 교회, 소규모 의류 공장정도만 모여있던 낡은 골목 한가운데 빈티지 레코드 샵이 생겼으니 아마 중구 다산로 주민은 단 한 명도 예상할 수 없는 가장 뜬금없는 점포였을 거다. 오픈 후 한 달 남짓, 샵에 대한 호평이 자자해지자 이전에 주문했던 턴테이블이 일본 어느 항구에서 출발하기도 전에 나는 궁금함을 못 참고 신당동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모자이크 사장님이자 디제이를 겸하고 있는 커티스 캄부 선생님..! 이미지 from 비슬라 인터뷰, 클릭해서 읽어보기 추천 : )

꼬불꼬불한 골목을 누비다가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은 이미 멋쟁이들의 시도 때도 없는 셔터소리로 가득했다. 모자이크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도배했던 신선한 비주얼의 따뜻한 민트티를 직접 마셔보고 나서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진열장으로 향했다.

같이 일하시는 DJ. 이후로 모자이크 갈 때마다 계심

민트티. 보기보다 훨씬 훌륭함

‘잠시만요', ‘지나갈게요’하며 한 귀퉁이에 앉아 7인치 크레이트를 뒤적거렸다. 문을 열던 순간부터 계산을 마치고 나가기까지 덤덤하게 무표정을 유지했지만 앨범 몇 장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휘저을 때마다 심장은 희열로 요동쳤다.

당시 역병의 창궐과 함께 서울 곳곳의 클럽, 베뉴들이 문을 닫으면서, 하루 아침에 갈 곳을 잃은 DJ들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나름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나는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좋아하는 DJ들의 훌륭한 라이브 믹싱을 안방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그때 그들이 소개했던 음악들과 아티스트들을, 구겨져 앉은 좁디좁은 귀퉁이에서 드디어 만나보고 손으로 만져보게 된 것이다.

7인치 음반이 4열 정도로 줄지어 진열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 줄을 톺아보고 오늘 지출하게 될 것 같은 금액의 규모를 예상하다가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건 음모다. 별안간 나타난 이 푸른 눈의 사장님이 앞으로 내 계좌를 서서히 벗겨먹겠구나.‘

예산 사정상 마음에 드는 모두를 데려갈 수 없었고 메인이라 할 수 있는 12인치 음반은 아직 둘러보기도 전이었기에, 골라둔 앨범 수 십 장 사이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토너먼트를 하며 어렵게 순위를 매겼다. 심사숙고 끝에 이윽고 아래 적은 동메달까지만 거두기로 결정한다.

🥇Whitney Houston - Saving all my love for you / Nobody loves me like you do
🥈Diana Ross - Mirror mirror / Sweet Nothings
🥉The Stylistics - Funky Weekend / If You Are There

 

직경이 7인치인 바이닐을 7인치 싱글앨범이라고 한다(간단하게 7")

흔히 가운데 뚫린 큰 구멍 때문에 ‘도넛’이라고도 불리는 7인치 싱글앨범은 오늘날 감상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보통의 경우 앞면에 1곡, 뒷면에 1곡이 프레싱되어 한 장을 사도 2곡 밖에 들을 수 없는데 이런 점 때문에 한 곡을 다 들으면 바늘을 들어 올리고 바이닐을 뒤집고 다시 바늘을 내려놓아야 나머지 한 곡을 들을 수 있다. 안락한 의자에 기대어 앉아 편안한 분위기에서 쭉 듣기엔 무리가 있다.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듯 이 작은 크기의 바이닐은 DJ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같은 앨범에서 2개 이상의 곡을 연달아서 플레이하는 것이 그다지 쿨하지 않은 그쪽 세계에선 어차피 이번 곡 다음은 다른 앨범에서 틀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7인치 앨범은 앞뒤 1곡씩 밖에 없으니까 매우 효율적이다. 저렴하고, 가볍고 콤팩트하여 이동하기도 좋다. 게다가 스크래치(휘끼휘끼~)를 필두로 하는 턴테이블리즘을 즐길 경우 바이닐의 소릿골 마모가 우려되는데, 희귀한 앨범만 아니라면 부담 덜고 사정없이 긁어댈 수 있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불편에도 불구하고 내가 7인치를 구매한 이유는 언젠가 때가 되면 턴테이블을 한 대 추가로 두고 믹서를 구비하여 방구석에서 나름의 믹싱을 하겠다는 작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규 앨범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에 7인치 싱글 앨범은 원하는 곡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대안이며 애초에 7인치 포맷으로만 발매하는 곡들도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쭈그려 앉아있던 탓에 저릿해진 두 다리를 끌고 오늘의 메인인 12인치 코너로 향했다. 워낙 사람이 많은 데다가 다양한 장르를 취급하고 장르별 앨범의 양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전체를 둘러보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들었다. 7인치 코너에 이어 두 번째로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욕심내지 않고 고른

Santana의 10집 앨범 「Inner Secrets」

여러 장을 마음에 담아두면서 앨범들을 넘겨보다가 당시 즐겨 듣던 ‘Game of Love’가 떠올라서 나는 별 고민 없이 계산대로 향했다. 산타나는 라틴 록의 자존심이지만, 이와 상관없이 화려한 기타 연주와 록 장르를 즐긴다면 이 10집 앨범은 당신에게도 꽤나 흥미로울 것이다. 산타나를 놓고서는 할 얘기가 적지 않으므로 다음에 따로 다루어보기로 하고.

모자이크는 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품목들과는 다르게 온라인 샵도 운영하고 있는데 이 둘을 합치면 취급 중인 음반의 양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장르는 또 어떤가. 가요, 일본 음악부터 하우스와 테크노, 재즈, 소울, 펑크, 힙합, 레게, 덥, 댄스홀, 제3세계 월드뮤직까지 매우 다채로워 그 누구를 데려와도 진열장 어느 한 군데엔 붙어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이 물건들을 다 떼오는 것인지 너무 궁금하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국내에 들어올까?' 하는 앨범들도 모자이크에는 아무렇지 않게 입고 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모두 중고 음반이지만 모자이크에서는 레코드 컨디션을 점수 매기는 국제 비공식 표준인 골드마인 그레이딩 방식에 따라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음반의 상태를 분류하고 그에 따른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한다.

 

DeBarge 2집. 모타운 클래식 "I Like it"수록!

어떤 곳에서는 갖은 프리미엄을 붙여 드바지의 <All this love> 중고반을 10만원 이상의 가격으로 내놓지만, 모자이크에서는 입고만 된다면 최근까지도 비슷한 컨디션의 동일 앨범을 2만원대에서 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콜렉터 입장에서는 이 샵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앨범을 그렇다면 입고되는 대로 관리 없이 바로 판매하냐? 그것도 아니다. 모자이크에 가보면 직원들이 매대 안쪽에서 먼지 묻은 레코드를 극세사 천으로 깨끗하게 세척하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레코드 샵을 놓고 볼 때 다양성, 가격, 품질 어느 면에서나 감사하고 싶은 모자이크가 내 수집 역사의 시작이었기에 지금까지도 즐겁게 판질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날 이후로도 아마 가장 많이 방문한 오프라인 매장일 듯.

 

참고로 모자이크에서는 수도권의 바이닐 콜렉터들을 좀비처럼 몰려들게하는 엄청난 규모의 7인치 염가판매 이벤트를 노상에서 돌발적으로 벌이기도 한다. 관심 있다면 서둘러 모자이크의 계정을 팔로우하길 바라며 이상 리셀러와 고마진 장사꾼들의 아비규환 속에서 고고히 제 갈 길 가는 서울의 상서로운 빛 모자이크 예찬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