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를 읽고. (2) - 2부

2부 식량 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

 

2부의 키워드

 

식량생산 가축화 작물화 / 정착 생활 / 비옥한 초승달 지대 / 안나 카레니나 법칙 / 대륙별 축

 

2부 소개

  총과 금속, 병원균, 문자 등을 먼저 거머쥔 민족은 더 쉽고 빠르게, 효율적으로 타 대륙과 민족을 지배할 수 있었다. 1부에서 제시한 스페인과 신대륙 원시 부족 간의 충돌에서 그 예를 확인했다. 이렇게 서구 열강에게 뒤집을 수 없는 힘을 준 '총, 균, 쇠'의 맹아가 되었던 것은 바로 기원전 자리 잡은 '식량 생산'이다. 원시적인 수렵과 채집은 세대 단위의 호구책으로는 알맞았겠지만, 한 민족의 오랜 번영에는 적합한 생활양식이 아니었다. 그 대신, 기르기 쉽고 수율이 좋은 야생 작물을 직접 길러 작물화하고, 온순하고 길들이기 쉬운 야생 포유류를 울타리에 가두는 목축화로의 전환(정확히 말하면 실험과 시행착오)이 수세기에 걸쳐 진행되면서 본격적으로 식량 생산을 시작했다. 기원전 인류는 발맞추어 자연히 터를 잡고 영토를 구분 지었다. 계급과 정치 제도 역시 싹을 텄고,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렇다면 식량 생산이 자리잡은 시기가 대륙별로 차이가 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이미 특정 민족이 육체적으로도, 지능적으로도 우위에 있기 때문에 그들이 먼저 식량생산을 시작했을 것이라는 우생학적 논지를 주장하지만 저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 이유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야생 식물들의 작물화, 야생 동물들의 가축화에서 대륙별, 지역별 속도 차이가 발생한 것의 원인은 동식물 그 자체와 '대륙의 축'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기르기에 적합한 여러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식물과 동물이 매우 적었다. 예를 들어 동물의 경우, 번식이 쉽고, 길들이기 용이하면서, 풍족한 단백질을 공급하면서도, 운송과 경작에 적합한 몸집과 힘을 가진 동물은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일컫는 서남아시아 아라비아 반도, 메소포타미아 문명 지역에 이런 동, 식물이 '운 좋게 몰빵'되는 천운이 따른다. 이렇듯 어느 지역에 어느 개체가 분포하게 된 내력은 당시의 인류의 지능과는 전혀 상관없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

 

  또한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부에 해당하는데, 이 지리적 위치 역시 중요한 원인이 된다. 지도를 보면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아메리카 대륙이나 아프리카 대륙(사하라 사막 이남)과 다르게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로 광활하게 뻗어있다. 같은 위도상에 위치한 국가일수록 유사한 기후와 환경을 가졌기 때문에 문명의 전파가 훨씬 용이했다. 따라서 사하라 이북의 아프리카 지역, 유럽에 이 초승달 지대의 가축과 작물이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다. 반면 아메리카 대륙의 경우, 동일한 작물과 가축의 남북 방향으로의 전파 시기가 훨씬 늦다. 일단 그 전파가 시작되면 해당 작물이나 동물이 매우 빠르게 자리를 잡은 증거들이 중남미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 것은, 그 지역의 거주민들의 식량 생산에 대한 의지는 충분했으나 적합한 가축과 작물이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역시 인간의 지능이나 신체적 조건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식량 생산(가축, 작물)의 전파는 곧 기술이나 발명품, 문자 등의 전파로 신속하게 이어졌다. 초승달 지대에서 남북으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지형적, 생태적 장애물에 의해 전파에서 소외된 지역은 자연스럽게 문명화에서 멀어졌다. 인근 지역의 여러 부족, 민족들은 풍족해진 식량과 인적자원을 근간으로 하여 각자의 세력을 확장하고 활발히 교류하면서 앞다투어 고대에서 중세로 나아갔다. 

 

  2부에서는 이렇게 총, 균, 쇠의 발명을 가져온 궁극적인 원인을 알아보았다. 뒤이어 3부에서는 식량 생산이 과연 총, 균, 쇠를 어떻게 빚어낼 수 있었는지, 또 향후 어떤 양상으로 피지배 대륙에 영향을 주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느낀점 

 

  중・고등 역사 시간에 배운 기원전 인류 파트에서는 진화 과정 외에 크게 기억에 남는 부분이 없다. 그러나 이 책의 2부까지는 왜 그 옛날 인류가 이 선택, 저 선택을 하며 수렵채집에서 식량 생산/정착생활을 시작했는지 납득 가능한 '맥락'으로 논리적인 전개를 펼친다. 결국 그러고 보면 수업 때는 기원 후의 역사만 배웠던 듯한데, 이렇게 아득한 먼 옛날의 인류의 역사도 전부 기록이 남았다면 세계사 교과서는 훨씬 두꺼워졌겠지만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식사시간, 식탁 앞에 앉아 밥을 한 술 뜨고선 눈앞에 가져와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건 누가 먼저 먹을 생각을 했을까?'라는 바보 같은 질문을 어렸을 때 여러 차례 마음속에 품어본 적이 있다. 이것을 '명륜동 사는 윤 모 씨 외 3명' 같이 그 옛날 누군가로 특정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이번 2부를 읽으면서, '밥'이라는 한국인의 넘버원 탄수화물이나 '빵' 등 필수 작물들을 기반으로 탄생한 식량이 무수히 많은 기원전 선조들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는 것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출판 당시 세간의 반응이 궁금하다. 그땐 정말 인종주의가 여전히 암암리에 만연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총, 균, 쇠」가 제시하는 담론은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마지막 4부&에필로그를 작성하며 한 번 조사해 보면 좋겠다.

 

  10년 전의 나에게 묻고 싶다. 아니, 5년 전의 나도 좋다. 과연 2024년이 되었을 때 네가 과연 지금보다 책을 더 읽을까? 그게 「총, 균, 쇠」라면 믿겠어? 그것도 모자라 뒷부분이 궁금하여 빨리 읽고 싶어 하고 있다면 그것도 믿을 수 있겠냐는 종류의 질문들을. 하지만 갑진년의 경칩을 지나며 나는 얼른 이 글을 마치고 3부로 진도를 넘어가고 싶다.(사실 그래서 위 내용도 조금 날림으로 썼다.) 나도 이런 내가 낯설다. 수능 과목 중 수리는 줄곧 젬병이었고 외국어는 그나마 봐줄만했다. 그러나 언어만큼은 성적이 들쭉날쭉이었다. 어쩔 땐 잘 나오고 어쩔 땐 기상천외한 점수와 등급을 맛보게 해 주었던 것이 언어 과목이었다. 나는 언어와 가까워지려야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곧 문학과 비문학에 대한 흥미가 없었다는 결론으로 넘어가는 성급한 착각을 했었던 것 같다. '소비 후 곧 휘발'인 스마트폰 속 콘텐츠들을 뒤로하고, 형광펜으로 밑줄 긋고 하이테크 펜으로 메모하며 「총, 균, 쇠」를 읽고 있다. 여기서 얻는 즐거움은, 1부에서도 언급했던 명사의 요약 핵심 유튜브 클립을 시청한다고 해도 아마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추신...) 파본 이야기

 

  읽고 있던 책이 파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7장을 읽을 때였다. 그전까지는 파본을 구경해 본 적도 없었다. 책날개에 작은 글씨로 인쇄되어 있는 '파본은 구입처에서 교환하라'는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7장을 읽던 중 손에 잡힌 다음 페이지를 넘겼을 때, 그다음 쪽이 새하얗게 텅 비어있었다. 단순히 '오타'가 있는 것만 파본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인쇄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일상적인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머리 속도 새하얘졌다. 혹시나 하며 그 뒤를 넘겨보았다. 7장 중 띄엄띄엄 약 8쪽 분량의 내용이 공백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8장부터 다음 3, 4부의 내용까지는 멀쩡했다.

 

  지금까지 잘 읽어왔으니, 그걸 바탕으로 7장이라도 저자의 마음이 되어 어떤 내용이 나와있었을지 유추해보아야 하나? 아니면 분량이 어떻든 그냥 읽어도 괜찮을까? 사실 이 책은 친절하게도 각 장(章) 초반에는 어떤 내용을 다룰지, 후반에는 어떤 내용을 다루었는지 재차 점검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고 계속 읽어나갔지만, 10장까지 읽고 나니 생략된 분량에 아무래도 중요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7장 이후 반복되는 특정 부분에서 먹구름 낀 듯 이해에 걸림돌이 생겼다는 것을 느껴서 영 찜찜했다. 구입처에서 서둘러 새 책을 받는 편이 좋겠다.